[오늘과 내일/이정은]‘프렌드 쇼어링’에는 친구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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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도 글로벌 공급망 연대에 동참 압박
관계 아닌 국익 바탕으로 선제적 결정해야

이정은 논설위원
이정은 논설위원
“중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자임이 분명하다. 미국은 중국의 폭력적이고 불법적이며 불공정한 관행들에 대응해야 한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대중관은 그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분명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자신의 인사 청문회에서 중국 관련 언급에 거침이 없었다.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이도 옐런 장관이다. ‘우방국들이 생산을 분담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직면한 백악관의 대응 보고서에 언급됐을 때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다. 옐런 장관이 올봄부터 싱크탱크 연설과 국제 회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총대를 멘 그가 최근 LG화학의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프렌드 쇼어링을 강조하리란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옐런 장관의 행보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연대 구축의 일부분일 뿐이다. 미국 상원은 이르면 이번 주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산업 육성법안’ 처리에 나선다. 미국의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대중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의회는 그대로 밀어붙일 태세다. 미국은 아시아의 반도체 강국을 묶는 이른바 ‘칩4(Chip4) 동맹’ 결성도 추진 중이다. 한미일 외에 대만이 멤버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보다 민감도가 훨씬 높다.

프렌드 쇼어링 대상 국가들의 반응 속도와 수위는 다르다. 그러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같은 전략물자의 확보를 위해 미국과 한 배를 타겠다는 목표는 같아 보인다. 동참 결정에는 각국의 이해득실 분석이 깔려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연대가 중국과의 마찰로 인한 손실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계산, 공동전선에서 홀로 떨어져 나갈 경우 산업은 물론이고 안보 측면에서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전략적 결정이라고 보는 게 맞다. 대만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당연히 ‘칩4’에 들어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IPEF 가입도 희망한다”고 귀띔했다.

미국과의 우호 관계가 이런 결정에 중요한 검토 요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초기 ‘동맹 쇼어링(ally-shoring)’이라고 불리던 단어를 ‘프렌드’로 바꾼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 아니었을까. 그러나 국익을 앞서는 우정은 없다. 친구 국가들의 선택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굳어지는 신냉전 구도 등의 국제 흐름까지 주도면밀히 살피며 뽑아낸 손익계산서의 결과다.

한국도 ‘칩4 동맹’의 가입 여부에 대해 8월 말까지 답변을 내놔야 한다. 고심을 거듭하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선택할 여지가 크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3%에 그치는 후발주자다. 한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이 ‘그들만의 리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가 기술 경쟁에서 설 자리는 급속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반발과 보복조치 가능성에 정부가 대응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국익의 관점에서 최종 판단이 섰다면 결정을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5월 IPEF 가입을 발표하면서 “초반에 들어가야 기존의 규칙을 따라가는 룰 테이커(rule taker)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판단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해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프렌드 쇼어링#글로벌 공급망#국익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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