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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래 살아도 재앙 아닌 축복 되게 하려면[오늘과 내일/이진영]

입력 2022-06-30 03:00업데이트 2022-06-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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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안락사법’ 상상하는 초고령 국가 일본
더 빨리 늙어가는 韓 연금개혁 미룰 수 없어
이진영 논설위원
요즘 일본에선 영화 ‘플랜 75’가 화제라고 한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작(특별언급상)인데 설정이 섬뜩하다. 75세가 되면 건강한 사람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정부가 그 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담당 공무원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장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좋다’는 ‘공익 광고’도 한다. 제도화된 죽음으로 노인 부양 부담을 일거에 해소하려는 불온한 정책인 것이다.

10년 전에 나온 일본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더 극단적이다. 70세 사망법이 통과돼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2년부터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 연금제도 붕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에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런 입법은 국가적 수치다” “노후 걱정 안 해도 되니 좋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연금을 포기하면 예외를 인정해준다는 소문에 포기각서를 들고 구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리는 ‘우바스테야마’ 설화의 나라,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도달한 일본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일까. 한국은 더 무서운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16.1%)은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2045년엔 37%로 일본(36.7%)을 추월할 전망이다.

연금개혁 속도를 비교하면 더욱 암울하다. 연금개혁 모범국인 일본은 2004년 더 내고 덜 받는 점진적 개혁을 단행해 보험료율은 18.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2040년까지 50%대로 인하하되 ‘거시경제 슬라이드제’를 도입, 연금 재정이 악화하면 연금을 줄이도록 했다. 실제로 2020년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2016년보다 줄어들었다. 올 4월엔 연금 수령 개시 나이를 현행 60∼70세에서 60∼75세로 늘려 잡은 ‘75세 플랜’도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노인 안락사법을 다룬 영화 제목과 같다. 75세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86세까지 살아야 손익분기점을 찍는다고 한다.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24년째 9%다. 2007년 소득대체율만 단계적으로 40%까지 인하했을 뿐 이후로는 5년마다 곳간 상황을 봐가며 개혁하라는 국민연금법을 무시하고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방치하고 있다. 그동안 보험료를 낼 출생아 수는 반으로 줄고 65세 이상은 배로 늘었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지난달 600만 명을 돌파했는데 2060년에는 1689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2055년이면 기금도 거덜 나니 그때부터는 일하는 세대가 월급의 최소 30%를 보험료로 떼어 줘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까. 국민연금공단이 지난달 ‘경축 국민연금 수급자 600만 명 돌파!!’ 현수막을 내걸자 “이게 축하할 일이냐” “완전 폰지 사기”라며 들끓은 게 젊은 민심이다. ‘미래세대의 반란’ ‘연금 지급을 끊는 연금 고려장’이 경고에서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60세부터 75세까지가 정신적 성장을 가장 많이 하는 인생의 황금기”라고 했다. 인생의 절정을 누릴 기대감에 고된 젊음을 견디고, 축복 속에 맞는 노년을 그려본다. 5년 주기의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가 발표되고 선거 부담이 없는 내년이 마지막 기회다. 윗세대보다 더 배우고도 못 버는 젊은 세대,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 폭탄을 떠넘기기보다 내 몫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만이 ‘그만큼 살았으면 그만 좀…’이라는 야만의 상상력을 이길 수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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