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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테라-루나 피해 100억… 가상자산 ‘금전’ 인정 여부에 처벌 달려[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2022-06-06 03:00업데이트 2022-06-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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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수사 핵심 쟁점
김기윤 사회부 기자
《최근 한국산 코인 ‘테라’와 ‘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이 수사에 나섰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테라·루나 개발사인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 티몬 이사회 의장, 테라폼랩스 법인 등을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등의 혐의로 잇따라 고소했기 때문이다.

5일까지 고소장을 낸 피해자는 104명으로, 이들이 입은 피해액만 약 100억 원에 달한다. 향후 추가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피해액은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을 둘러싼 개발자와 투자자의 분쟁이라는 점에서 쟁점이 단순치 않다.》

○ 담보 자산 없이 가치 고정?


검찰은 먼저 테라·루나 코인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테라·루나는 가격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의 취약점을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스테이블 코인’의 일종이다. 가상화폐 테더(USDT)의 경우 가치를 달러에 고정하기 위해 달러를 예치한 만큼 발행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스테이블 코인도 있다. 그러나 이들 코인 역시 실제 발행량만큼 담보 자산이 예치되는지에 관해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테라·루나는 알고리즘으로 총 발행량을 조절해 가격을 유지하는 ‘알고리즘 기반형’으로 분류된다. 1테라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테라가 루나로 교환되고, 1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반대로 루나가 테라로 교환되는 방식으로 테라의 공급량이 조절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루나 역시 아무런 담보가 없으므로 사실 이 같은 교환은 별 의미가 없다. 이런 방식으로 페깅(pegging·가치 고정)이 가능하다는 건 자신의 머리채를 끌어올려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허풍선이 남작’의 허풍과도 비슷하다.

테라는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서비스 ‘앵커 프로토콜’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앵커 프로토콜은 마치 은행처럼 테라를 예치하면 이자를 주고, 다른 가상자산을 담보로 테라를 대출해줬다. 한데 예금 금리보다 높은 대출 금리로 이윤을 내는 은행과 달리, 앵커 프로토콜은 예금 금리(18∼20%)가 대출 금리(12.4%)보다 높았다. 투자자들은 테라를 대출받아 다시 예치하면 빠르게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돈이 예치되지 않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한 이 시스템은 마침내 폭락 사태로 끝났다. 일각에서는 신규 투자금으로 앞선 투자자에게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면서 ‘돌려 막기’를 하다가 투자금을 가로채 달아나는 ‘폰지 사기’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현재 드러난 것만 봐도 테라·루나가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 가상자산도 ‘금전’일까?

그러나 이번 사태를 ‘유사수신행위’로 처벌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관련법은 법에 따른 인허가 취득이나 등록·신고를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유사수신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예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받는 행위도 해당된다. 문제는 가상자산을 ‘금전’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현재 국내에서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2021년 개정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유일하다. 특금법은 그간 ‘암호화폐’ ‘가상화폐’ 등으로 불리던 것을 ‘가상자산’으로 규정했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이기는 하지만 가치가 급변하는 탓에 화폐로 쓰이기 어렵다는 취지가 포함돼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가상자산에 대해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사기’ 혐의는 권 대표 등이 시스템상의 문제를 알면서도 이를 숨기거나 거짓말을 해 투자자를 계속 모집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합수단은 테라·루나와 앵커 프로토콜 시스템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테라·루나의 동반 폭락은 시간문제였을 뿐 예견이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전문가들이 알고리즘의 허점을 수차례 경고했다”면서 “이번 사태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영국 경제학자인 프랜시스 코폴라가 테라·루나와 같은 알고리즘 기반형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를 예견한 바 있다. 이번 사태의 일부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관계자는 “시스템 설계 오류나 하자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기망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별위원회의 박주현 변호사는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권 대표 등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테라폼랩스와 블록체인 기술 개발업체인 K사의 자금거래 관련 의혹도 제기된다.

K사는 테라 생태계의 알고리즘 특허를 보유한 회사다. 피해자들은 테라폼랩스와 K사가 한 건물에 있었고, K사의 김모 대표가 테라폼랩스의 간부로 재직했던 점을 근거로 이 회사가 사실상 권 대표의 ‘차명회사’였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세청의 테라폼랩스 탈세 혐의 조사 과정에서 김 대표가 60억 원가량의 가상자산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는데,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단은 이 같은 의혹도 살피고 있다.

이와 별개로 경찰은 최근 회사 소유 가상자산 수십억 원어치를 현금화해 횡령하려 한 혐의로 테라폼랩스 전 직원 A 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횡령금의 출처를 추적하는 한편 혹시 피해자들의 투자금 중 일부가 흘러들어간 정황은 없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권 대표는 이따금씩 트위터로 주장을 펴고 있지만 소재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테라폼랩스의 싱가포르 현지 사무실은 현재 폐쇄된 것으로 전해졌다.

○ “가상자산 규제 방안 논의해야”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가상자산을 악용한 범죄 피해액은 2017년 4674억 원에서 지난해 3조1282억 원으로 불어났다. 피해자 수도 같은 기간 1317명에서 지난해 8891명으로 증가했다.

피해가 커지면서 가상자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3월 금융 안정성 및 금융시스템의 무결성 보장, 범죄 및 불법 금융의 예방, 국가 안보 보장을 위해 부처별로 필요한 가상자산 규제 법안과 정책을 마련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다.

가상자산 규제가 국가에서 제도권 내로 편입시키는 뜻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일단 관계 기관이 ‘의심거래보고’ ‘가상자산 시장·동향 정보’ 등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전에 위험 요소를 규제,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발행인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중요 투자정보를 투자자에게 공시하는 입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윤 사회부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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