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재발견[삶의 재발견/김범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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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쓴 지 2년이 넘었다. 코로나 시국에 새로 만난 사람 중에는 맨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지만 처음에는 의사소통에 걱정이 많았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의 반이 가려지니 상대방의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미묘한 사안을 이야기할 때 얼굴에 나타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읽지 못해 대화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스크가 익숙해지면서 단점 못지않게 장점도 눈에 들어왔다. 우선 마스크를 쓰면 상대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곳이 눈뿐이라 자연스럽게 시선을 상대방의 눈에 맞추게 됐다. 눈을 보며 대화하니 생각보다 눈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모른다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게 되니 더 경청하고 대화에 더 집중하게 됐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쓴 채 대화해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마스크를 벗을 때다. 최근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고, 진료실에서도 환자가 입안이 헐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어 보라고 할 때가 있다. 상대의 마스크 쓴 얼굴만 보다가 맨 얼굴을 마주하면 내가 상상하던 얼굴과 꽤 달라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눈과 이마의 생김새로 추정해본 나머지 골상은 내가 생각한 형상과 매우 다르다. 그럴 때마다 눈앞의 사람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다르게 느껴져 생소했고, 이미 내 머릿속에는 상대의 인상이 마스크 쓴 얼굴로 각인되었는데 맨 얼굴로 새롭게 심어 넣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맨 얼굴을 본 뒤 내 무의식 속에 새겨져 있던 수많은 편견이 다시 작동하는 것이 곤혹스럽다. 이를테면 ‘광대뼈가 튀어나온 것을 보니 고집이 세겠군’ ‘피부가 깨끗한 것을 보니 왠지 호감이 가는군’ ‘턱뼈가 넓은 것을 보니 강한 성격인가 보군’ 같은 것이다. 맨 얼굴을 마주함과 동시에 얼굴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다시 꿈틀댄다.

과거의 경험으로 무의식에 새겨진 얼굴에 대한 선입견은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차라리 얼굴을 일부 가리고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른다는 마음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면 그 사람의 총체적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모를 넘어서 눈을 보는 일. 껍데기를 넘어서 본질을 보는 일. 얼굴로 편견을 갖지 않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일.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나고 우리도 언젠가는 마스크를 벗겠지만, 그때도 얼굴 너머의 그 무엇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마스크#얼굴#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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