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시즌 손흥민은 말 그대로 기록 제조기였다. 필드골로만 23골을 넣으며 차범근 전 감독이 1985∼1986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세웠던 한국 선수 유럽 축구리그 시즌 최다 골(17골) 기록을 넘어섰다. 종전 아시아인 유럽 1부 리그 최다골(21골) 기록도 경신했다. 손흥민이 고교 1년을 중퇴하고 유럽으로 간 지 14년 만이다. 경기장 안에선 ‘축구 못하는 동네에서 온 녀석’이란 편견에 패스도 안 하던 동료들을 실력으로 돌려세웠고, 경기장 밖에선 문화 차이와 언어 장벽을 극복해낸 피땀의 결실이었다.
▷손흥민이 득점왕에 이른 과정도 개인주의가 강한 유럽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때마다 개인 기록보다 팀 성적을 우선시했다. 시즌 막판 숨 막히는 득점왕 경쟁을 하면서도 팀 승리를 위해 PK 찬스를 흔쾌히 양보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선 언제나 공(功)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손흥민이 앞장서 EPL에서 보기 힘든 팀 문화를 만들었고, 23일 최종 경기에서 동료들은 한마음으로 득점을 돕고 나섰다.
▷과거 한국 축구 전설은 차범근과 박지성이었다. 누가 최고냐는 논쟁에 차 전 감독은 작년 한 방송에서 “지금 손흥민이 이루고 있는 업적은 우리 둘이 못 따라간다”며 자신을 꼴찌로 꼽았다. 물론 후배들은 선배를 앞세웠다.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 1점 차이로 EPL 우승컵을 놓친 위르겐 클로프 리버풀 감독은 아쉬워하면서도 “2위는 내 인생 이야기다”라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실력과 겸손함을 갖춘 월드 스타들의 진면목이다. 인생살이 덕목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