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은 어제 담화에서 “남조선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무력은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측이 선제타격에 나서면 핵전쟁으로 대응하겠다는 공공연한 위협이다. 그러면서도 김여정은 “남조선이 우리를 반대하는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 발도 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협박과 유화 메시지가 교묘하게 뒤섞인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이틀 전 서욱 국방부 장관의 ‘발사 원점 정밀타격 능력’ 발언을 들어 ‘미친 놈’ ‘쓰레기’ 같은 저급한 언사를 남발하던 것에 비하면 그 어조부터 차분해졌다. 새삼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라고도 했다. 거친 상소리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신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핵 협박의 수위는 한층 끌어올렸다. 남북 간 모든 문제의 근원인 핵은 포기할 수 없으며 핵 공격도 각오하라고 대놓고 위협했다. 이런 이중적 메시지엔 한 달 뒤면 출범할 남측 새 정부의 강경 대북정책에 대한 경계심, 나아가 남북 군사충돌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여정의 담화는 윤석열 차기 정부의 대응을 떠보기 위한 노림수인 것이다. 과거에도 북한은 남측 정권교체기마다 대결 분위기를 조장하면서도 물밑 대화를 모색하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당장은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일 가능성도 높다. 미사일 도발은 기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신종인 것처럼 위장하며 그 한계를 드러냈고, 핵실험은 준비에 시간이 걸리니 북한으로서도 잠시나마 속도 조절이 필요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뻔한 술책에 놀아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처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4월은 어느 때보다 정세 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아직은 문재인 정부의 시간인 만큼 원칙적인 메시지 외에는 가급적 대응을 자제하면서 철저한 현황 파악과 인수인계에 주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도발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닫지 않는 정교한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후 떠맡게 될 책임과 부담을 생각하면 그 시간이 넉넉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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