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각국, 제각각 우크라 셈법… 터키 “중재” 사우디 “제재 불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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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10일(현지 시간)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서 터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3개국 외교장관이 만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왼쪽 사진 오른쪽)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차우쇼을루 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오른쪽 사진 오른쪽)과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안탈리아=AP 뉴시스
10일(현지 시간)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서 터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3개국 외교장관이 만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왼쪽 사진 오른쪽)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차우쇼을루 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오른쪽 사진 오른쪽)과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안탈리아=AP 뉴시스
《8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도심의 ‘시난 파샤 모스크’를 찾았다. 1574년 건립된 곳으로 당시 이집트를 통치하던 오스만튀르크의 총독 시난 파샤의 이름을 땄다. 1517년부터 397년간 이집트를 지배한 오스만튀르크가 곳곳에 남긴 터키식 문화유산의 정수로도 꼽힌다.》
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한때 중동 대부분을 다스렸던 오스만튀르크의 후예 터키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양측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 강화를 꾀하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0일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서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과 3자 회담을 가졌다. 비록 회담이 휴전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낳지는 못했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의 외교 승리”라고 자축했다. 세계 군사력 2위 러시아를 자국 영토로 불러들일 만큼 터키의 중재 역량이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국제 유가에 내심 반색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부호들이 몰려드는 아랍에미리트(UAE), 유대계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처하지만 러시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 또한 미국과 러시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이란 핵합의 복원에도 돌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 전체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중재자 자처하는 터키·이스라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인 터키는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 등에 군함의 출입을 금지하는 ‘몽트뢰 협약’을 발동했다. 이로 인해 시리아 등에 있는 러시아 해군이 흑해로 들어올 수 없게 됐다.

터키는 우크라이나에 무인기(드론) 등의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살상 또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백 년간 흑해 패권을 다퉈 온 러시아를 다방면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방은 터키가 미국 등의 강한 반대에도 2019년 8월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불리는 S-400 미사일 체계를 도입했다는 점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나토에 속한 터키가 나토의 최대 위협인 러시아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또한 중재자를 자처한다.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대계 혈통을 반기지만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이란 및 시아파 세력 등과 싸우기 위해 러시아와도 협력하고 있다.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는 3일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그는 침공 후 푸틴 대통령을 대면한 첫 번째 외국 정상이다. 베네트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수시로 통화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푸틴 대통령과 예루살렘에서 회담을 갖고 싶다”며 이스라엘의 도움을 요청했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와 UAE는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등 바이든 행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美에 불만인 사우디와 UAE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고층빌딩 뒤편에 있는 ‘시난 파샤 모스크’의 모습.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1574년 건립된 곳으로 한때
 중동을 제패한 터키의 위력을 보여주는 건물로 꼽힌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터키는 양측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고층빌딩 뒤편에 있는 ‘시난 파샤 모스크’의 모습.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1574년 건립된 곳으로 한때 중동을 제패한 터키의 위력을 보여주는 건물로 꼽힌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터키는 양측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지난해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후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온 두 나라는 최근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8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UAE 실권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가 몇 주간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전면 금지라는 초강경 제재를 내놨다. 그 대신 사우디,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에서의 원유 수입을 늘려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에 따른 후폭풍을 줄이겠다는 속내였다. 이 계산이 틀어진 것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2018년 터키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의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점을 줄곧 비판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8월 사우디가 러시아와 군사협력 협정을 맺은 것도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했다.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를 테러 집단에서 해제한 게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UAE 역시 후티를 두둔하는 듯한 미국에 불만이다. 특히 UAE는 올해 초 후티가 수도 아부다비 등에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을 가했는데도 미국이 후티를 제재하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았다며 서운함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UAE는 지난달 25일, 이달 2일 유엔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 표결 때 연달아 기권표를 던졌다. 이에 화답하듯 러시아 또한 지난달 28일 후티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자는 UAE의 결의안을 지지했다.

중동의 금융 허브인 두바이에 러시아 신흥부호(올리가르히)의 돈이 몰려든다는 점도 UAE가 러시아를 편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측근 사업가와 관료 등 최소 38명이 3억1400만 달러(약 3190억 원)의 두바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입항이 금지된 러시아 부호의 호화 요트가 두바이항에 정박한 모습도 볼 수 있다고 알자지라는 14일 전했다.
이란 핵합의 복원도 난항
러시아가 5일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 서방의 경제 제재를 거세게 비판함에 따라 이번 사태가 합의 복원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와 이란과의 협력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 달라”며 미국의 서면 보증을 요구했다.

2015년 이란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등 6개국과 핵합의를 체결했다.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가로 국제 사회가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조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가 2018년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협상 복원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오고 있다. 미 언론은 지난달 초부터 양측의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고 보도해 왔다. 하지만 이 와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핵합의 당사자인 6개국 간 이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 UAE, 이스라엘이 이번 사태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편만 들지 않는 것 또한 핵합의 복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세 나라 모두와 불편한 관계이며 특히 이스라엘, 사우디와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사이다. 세 나라는 모두 내심 이번 협상이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다. 합의 복원을 주요 외교 치적으로 삼으려던 바이든 행정부의 속내 또한 복잡해지게 됐다.

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hsh0330@donga.com
#터키#이스라엘#사우디#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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