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이 반복하는 ‘캣 앤드 마우스’ 게임[동아광장/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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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솔 상장 이후 모회사 ‘개미들’ 손해 논란
소액주주 이익 늘리려면 회삿돈 풀게 유도해야
규제는 성장의욕 꺾고, ‘脫코리아’ 행렬 늘 수도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LG에너지솔루션(엔솔) 상장이 화제가 됐다. LG화학이 잘나가는 배터리 사업부를 자회사로 ‘물적 분할’한 후 상장을 시켜 단숨에 시가총액 2위의 공룡 기업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모회사 주가가 폭락하며 기존 소액주주들의 원성을 산 게 그 이유다. 모회사 시가총액이 자회사 지분 가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 해괴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된 한국 주식)의 원흉인 대주주 리스크가 또다시 불거졌다며 소액주주 권리 강화에 한목소리를 냈다.

물적 분할을 통해 LG화학은 대주주 경영권을 지키며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했다. 이 자체는 소액주주 입장에서도 문제 될 게 없다. 투자는 곧 미래의 이익이고,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기존 경영진이다. 그렇다면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이 성장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금 조달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돈을 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을 파는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은 이자를 꼬박꼬박 물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주식을 발행하면 대주주 지분이 희석돼 경영권이 위협을 받는다. 양쪽의 단점을 동시에 피해 가는 한 방법이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성장하는 사업부를 떼어내 새로 회사를 만들어 그 주식을 일부 팔면, 수익을 독차지하진 못해도 적은 지분으로 안정된 경영이 가능하다. 기업의 자금 조달과 지배구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한국의 재벌은 순환출자를 사용해 돈을 모으고 사업을 키웠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위기에 취약하다. 그룹 내 한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순환출자 구조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때가 1990년대 ‘외환위기’다. 이 사태를 계기로 지주회사 체제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지주회사 구조는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 유지가 가능하면서도 위기가 닥치면 환부만 도려내는 구조조정이 더 용이하다. 분가한 자식이 돈을 까먹어도 그 피해가 부모한테 전가되지 않게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LG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가 갈라진 주원인을 제공한 게 지주회사 구조의 바로 이 장점이다. 모회사 대주주가 자회사로부터의 유입을 막을 수 있는 건 손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배당 성향은 선진국 중 꼴찌인데, 주주 몫의 수익이 모회사로 올라오기도 전에 자회사에서 한 번 더 깎인다고 생각해 보라. 자회사가 손자회사를 만들지 말란 법도 없다. 이렇게 발생하는 ‘지주회사 디스카운트’는 한국에서 유독 심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생긴다. 경영권을 쥔 대주주는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왜 배당을 더 하고 자신의 주식 가치를 올리려 하지 않을까. 대주주는 장기 투자자고 소액주주는 단기 투기꾼이라서 그렇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소액주주 이익을 늘리려면 결국 회사가 갖고 있는 돈이 바깥으로 좀 더 나오게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비민주적’인 지배구조가 문제의 근원이라 보고 여기에 화력을 집중했다. 적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법인(法人)’이란 아바타 뒤에 숨어 경영권을 맘대로 행사하며 회삿돈을 불공정하게 유용하고 있으니, 그 길을 규제와 감시를 통해 일일이 차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는 ‘꼼수’를 낳고, 이는 또 다른 규제를 낳는 악순환이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해 회삿돈(사내유보금)에 직접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규제는 누더기 수준을 넘어 유치해지는 중이다. 정권이 바뀌면 법인차량 번호판 색깔까지 바뀔 판이다. 그런데도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관계는 여전히 일촉즉발 상태다. ‘채찍’ 일변도의 지배구조 개입은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이고 성장 의욕을 꺾는 부작용도 낳는다. 그나마 성장하려는 기업은 ‘탈(脫)코리아’를 고민한다. 쿠팡처럼 미국 시장에 가면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해 깔끔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이번 LG엔솔 사건은 정부와 법인이 쫓고 쫓기는 ‘캣 앤드 마우스(Cat and Mouse) 게임’에 새 장을 열 걸로 예상된다. 빤한 규제만 더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 피곤한 게임을 보다 보면 가끔 법인이 엄청난 돈을 토해낼 때가 있다. 상속세 때문이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삼성 일가의 상속세는 자그마치 12조 원이다. 덤으로 보물까지 나왔다. 보물은 박물관에라도 간다. 나머지 12조 원은 다 어디로 갈까? 소액주주들한테 가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캣 앤드 마우스 게임#lg엔솔 사건#상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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