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尹 구했지만 망칠 수도 있다[오늘과 내일/정용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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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포위론’ 도그마에 갇혀 단일화 어깃장
홀로 ‘일등공신’ 되려다 욕심이 禍 부를 수도

정용관 논설위원
정용관 논설위원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이준석 대표는 ‘병 주고 약 주는’ 존재다. 지난 한 달 이 대표의 처방전은 적절했고 유효했다. 올 초 낭떠러지 일보 직전의 윤 후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표의 대선 전략인 이른바 ‘세대포위론’이 상당 부분 먹혔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윤 후보가 주춤하는 사이 17%까지 찍었던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20%대로 진입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건희 씨 녹취파일 공개 후 이준석류의 젊은 2030 젊은 세대가 SNS상에서 조직적으로 방어벽을 구축하고 역공에 나서주지 않았다면 여론은 어디로 흘렀을까. 부모 세대에 자녀 세대를 결합시켜 4050세대를 공략하자는 세대포위 전략으로 2030 지지율을 반등시켜 안 후보의 상승세를 꺾고 이재명 후보와 박빙 구도를 형성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윤 후보가 승리한다면 이 대표를 공신록의 상단에 올려놔야 할 이유는 된다.

세대포위 전략의 효험은 이젠 한계에 봉착한 듯 보인다. 윤 후보 지지율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4자 구도에서 30%대 중후반을 확 뚫고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2030 지지율도 기대한 정도만큼은 아니다. 이 대표는 호남 공략을 결합시키고 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 힘들다. 세대포위 전략만으론 중도 확장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도층 10%를 안 후보가 붙잡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안 후보가 완주할 경우 사표 방지 심리를 감안해도 6, 7% 정도는 얻을 것으로 예측된다. 투표율 75%일 경우 200만 표 정도는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대선 향배에 큰 변수가 될 정도는 된다. 2007년 이회창 후보가 15%를 얻었음에도 MB가 승리하긴 했지만, 그땐 민주당 세력이 사실상 대선에 손을 놓았었다.

안 후보가 진퇴양난의 외통수에 빠진 형국인 것은 맞다. 막대한 선거비용 문제를 떠나 한 자릿수 득표율로는 정치적 소멸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을(乙)의 딱한 처지에 놓인 것만도 아니다. 민주당과 손잡는 일은 100%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다만 자신이 단일 후보가 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위험한 거래’를 하기보다는 윤 후보와 하는 게 그나마 명분이 있고 성공 확률도 훨씬 높은 ‘남는 장사’가 될 것이란 계산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안 후보 발언의 행간을 읽어보면 윤 후보 측에 내심 두 가지 조건을 발신하고 있는 것 같다. 공동 정권의 실질적 보장책, 그리고 “소값 잘 쳐줄게” “돈 때문에 포기할 것”이라며 자신을 끊임없이 조롱해온 이준석 문제다. 윤 후보가 말했듯 단일화는 전적으로 후보 간 문제다. 대표의 직인(職印)이 필요하지 않다. 단일화 논의가 얼핏 물 건너간 듯 보이지만, 6월 지방선거 공천이나 합당 이슈 등만 제쳐두면 합의서는 하루 만에 나올 수도 있다.

이 대표의 어깃장이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둘 사이의 사감을 넘어 안 후보가 차기 대선의 경쟁자가 되는 상황부터 마뜩지 않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선거 중독자”라고 했다. 컴퓨터 게임처럼 승부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이게 나라냐”에서 “이건 나라냐”의 혼란을 겪었다. 이번 대선은 “바로 이게 나라다”는 걸 둘러싼 싸움이다. 이 후보와 윤-안 단일 후보 간 맞대결이 이뤄져야 정확한 표심이 대선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세대포위 도그마를 뛰어넘지 못한 채 홀로 ‘일등공신’이 되려다 자칫 대사(大事)를 그르치고 만 대표가 될지도 모른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윤석열#이준석#병 주고 약 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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