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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노먼 록웰과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움직이는 미술/송화선]

입력 2021-12-03 03:00업데이트 2021-12-0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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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록웰, ‘우리 모두 안고 살아가는 문제’. 노먼록웰뮤지엄 소장
송화선 신동아 기자
이유 없이 우울한 날엔 노먼 록웰(1894∼1978)의 그림을 뒤적이곤 한다. 일상 곳곳을 향해 있는 화가의 따스한 시선을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훈훈함이 느껴져서다.

록웰은 1910년대 중반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주로 잡지 표지와 삽화를 그리며 명성을 쌓았다. 그는 탁월한 현실 묘사로 독자에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전달하는 저널리스트였다. 동시에 보도사진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감성과 통찰을 표현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록웰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미국 잡지 ‘룩(LOOK)’에 실린 ‘우리 모두 안고 살아가는 문제(The Problem We All Live With)’를 꼽을 만하다.

이 그림은 1960년 11월 14일 아침 풍경을 담고 있다. 6세 소녀 ‘루비 브리지스’의 등굣길이다. 그 시절 미국에는 ‘인종분리 장벽’이 남아 있었다. 오랜 소송 끝에 마침내 법원이 ‘인종분리 철폐’를 선언하자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살던 브리지스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을 신청했다. 그때까지 백인만 다니던 곳이다. 곧 세상이 떠들썩해졌고, 브리지스와 그의 가족은 살해 협박을 받았다. 아이는 정부가 파견한 연방보안관의 호위를 받으며 학교를 향해야 했다. 록웰이 그림에 담은 바로 그 장면이다.

당시 현장에는 소설 ‘분노의 포도’로 유명한 작가 존 스타인벡도 있었다. 스타인벡은 이날 브리지스의 눈빛이 “겁에 질린 새끼 사슴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작은 소녀 바로 앞에서 백인 수백 명이 격렬한 등교 반대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면 비로소 아이를 둘러싼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브리지스 오른쪽 벽 위로 흑인을 비하하는 낙서(‘NIGGER’)가 보인다. 긴장한 듯 움켜쥔 연방보안관의 주먹 옆에는 으스러진 토마토 자국이 선명하다. 록웰은 어쩌면 끔찍하다고도 할 수 있을 이 순간을 기록하면서, 욕설을 퍼붓거나 토마토를 집어던지는 백인 쪽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작은 손에 책을 들고 의연히 걸음을 옮기는 한 소녀에 집중했다.

어쩌면 당시 아이는 스타인벡의 글에서처럼 두려움에 떨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결코 등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백인 학생 전체가 수업을 보이콧해 교실에 혼자 남겨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용기가 결국 세상을 바꿔냈다. 록웰은 이 작은 소녀의 마음에 자리한 담대한 신념을 잡지 삽화로 표현함으로써 세상 많은 사람에게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변화의 기운을 전했다.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취임 후 집무실 앞 벽에 록웰의 이 그림을 걸었다.

최근 극장가에선 한 권의 잡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감독 웨스 앤더슨)가 화제다. 여러 기자가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 풍경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역사에 남기는 과정을 보며 록웰과 그의 그림과, 그 작품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브리지스를 떠올렸다. 인쇄 매체의 시대가 저문다고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잡지가 가진 힘과 매력이 있다.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잡지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송화선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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