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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명궁 DNA’의 한계[임용한의 전쟁사]〈188〉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1-11-23 03:00업데이트 2021-11-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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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명궁에다 강궁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려 말 황상이란 장수가 있었다. 원나라는 몽골인이 세운 나라라 명궁이 많았다. 황상은 원에 가서 벼슬을 하면서 원나라 궁수들과 경기했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황제가 어떻게 그렇게 활을 잘 쏘느냐며 황상의 팔을 만져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노년에 이성계와 경기를 했다. 50발을 쏠 때까지는 서로 빗나가는 화살 한 발 없이 팽팽한 승부를 벌였는데, 50발이 넘어가니 황상의 체력이 달리면서 빗나가는 화살이 나왔다고 한다. 이건 실력 차이라기보다는 나이로 인한 체력 차이로 봐야 하니 황상의 패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몽골군이 말과 활로 세계를 제패했다고 하지만, 고려 궁수들의 실력은 몽골군을 놀라게 했다. 세월이 지나 활이 조총으로 바뀐 뒤에는 조선 포수들의 실력이 뛰어났다.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흥기하자 명나라가 토벌전을 벌이면서 조선에 병력을 요청했다. 비록 패했지만, 이때의 전투에서도 조선 포수들의 실력은 탁월했다. 명군도 그것을 알고 조선 포수를 적극적으로 요청했었다. 17세기 후반 연해주에서 청과 러시아 사이에 국경분쟁이 발생했다.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조선군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조선은 중대 규모 병력의 포수를 파견했다. 이것이 나선정벌이다. 이때 조선군과 청군이 사격훈련 내지는 경기를 했는데, 조선군 포수의 실력이 월등히 좋았다.

현재도 양궁은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이고 사격도 세계 대회에서 메달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이지만, 역사를 보면 훈련과 노력을 넘어선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19세기 말이 되면 이 놀라운 사격 솜씨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나라를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주력 무기가 조총이었다. 소프트웨어는 탁월한데 하드웨어에서 몇 세대가 뒤처졌던 거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불균형이 이렇게 무섭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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