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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당신의 방[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2〉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11-20 03:00업데이트 2021-1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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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방엔
천개의 의자와
천개의 들판과
천개의 벼락과 기쁨과
천개의 태양이 있습니다
당신의 방엘 가려면
바람을 타고
가야 합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마 당신의 방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새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승훈(1942∼2018)

내장산 단풍이 타오르듯 붉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그걸 보러 갔다. 더 많은 사람이 그걸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단풍이 붉든 붉지 않든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나도 단풍을 좋아했었지 싶지만 지금 아무 설렘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를 좋아하고, 희망하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타는 듯 붉은 단풍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나는 끝없이 추락하는 듯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우울하다’는 뜻이다. 우울하면 우리 마음속에는 딱 나 하나만 들어갈 좁고 어두운 방이 생겨난다. 그곳에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타는 듯 붉은 단풍이 아니라, 타오르는 뜨거운 마음이다.

오늘은 우울의 검은 방에 대항할 만한 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승훈 시인의 이 시에는 천 개의 기쁨과 천 개의 태양이 있다. 하나의 기쁨도 알지 못하는 터에 천 개의 기쁨이라니. 관 같은 어둠에 들어앉은 눈에 천 개의 태양이라니. 이 기쁨은 심장을 터지게 하고 이 태양은 눈을 부시게 한다. 시인은 죽을 때까지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고백은 결코 포기나 좌절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할 줄을 알면서도, 천 개의 기쁨과 천 개의 태양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열정’이라고 부른다.

생전의 이승훈 시인이 그랬다. 서양 시학의 최첨단이든 동양 시학의 최정점이든 시인은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추구했다. 성공했느냐 묻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어둠의 시대다. 지금 우리는 태양의 방을 가졌을까.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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