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선희]스타벅스 트럭 시위로 본 ‘MZ가 플랫폼을 만났을 때’

박선희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10-20 03:00수정 2021-10-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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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최근 두 곳의 오픈단톡방에 가입할 일이 있었다. 먼저 가입한 곳은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적용될 정책에 반대하는 학부모 모임이었다. 멀쩡한 학교를 몇 년 동안 전면 개축할 거라는데 정작 재학생에 대한 대책은 없어 보여 마음이 급했다. 두 번째로 가입한 곳은 다니던 대형 스포츠센터가 돌연 폐업한 뒤 생긴 피해자 모임이었다. 최근까지도 신규 회원을 계속 유치하기에 방심했다가 연회비 절반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누군가 오픈톡방을 개설하자마자 서로 연락처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 수백 명이 같은 목적 아래 신속하게 집결했다. 하지만 일이 된다 싶은 건 거기까지였다. 이후로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성격이 다른 두 곳의 대화 패턴이 흡사했다. 피해 호소와 비난이 쏟아지다가 누군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 침묵이 길어졌다. 오픈톡은 익명의 군집일 뿐,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어떤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려던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은 결국 이 지점에서 좌절됐다. ‘조직’ 없는 ‘조직적 대응’은 불가능했다. 답답함에 “일단 만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생업을 제쳐두고 모이려는 이들이 많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최근 스타벅스 직원들의 무(無)노조 트럭 시위가 이런 통념을 깼다. 경품 증정 행사에 몰린 인파로 큰 혼란을 빚은 ‘스타벅스 리유저블컵 대란’ 이후 이 회사 직원들은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에 모여 회사 측의 과도한 판촉 행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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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이후 22년간 노조가 없던 이들에겐 조직력, 집행력, 자금력이 모두 없었다. 하지만 인력 부족, 처우 등 근로 여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모아지자 각종 플랫폼을 현명하게 활용했다. 간편송금앱으로 3시간 만에 모금했고 대행사를 통해 전광판 트럭을 구했다. 개선 요구사항을 띄운 트럭은 이틀간 서울 시내를 돌게 해 시위 효과를 높였다. 거대 노조가 “우리가 돕겠다”고 제안을 해왔지만 “필요 없다”며 퇴짜를 놨다. 이들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익명의 원격 지휘’만 총괄한 후에 ‘쿨’하게 해산했다.

틀을 깬 시위의 효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타났다. 불과 열흘 만에 사측에서 채용 확대와 임금 개선까지 약속해 왔다. 만나서 통성명하고, 대표 뽑고, 조직부터 만들고 보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창의력에 플랫폼 기술이 더해져 가능해진 신선한 변화였다. 개인적이며 집단적이고, 수평적이며 조직적인 익명의 단체 행동이 가능해졌다.

“세상을 바꾸자”가 스타트업 업계의 고전적 모토라지만, 실제로 새로운 세대는 기술을 활용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있었다. 문제의식을 가진 MZ세대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기술 플랫폼은 어떤 기성 단체의 조직력보다 막강한 무기가 됐다. 며칠째 두 오픈톡을 지켜보며 ‘익명의 한계’니, ‘조직력의 부재’니 안 되는 탓만 하고 있던 걸 그래서 잠시 멈췄다. 보다 나은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스타벅스#트럭 시위#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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