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미국의 ‘中포위’ 동맹 활용법

이철희 논설위원 입력 2021-10-07 03:00수정 2021-10-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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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엔 미사일 제한 해제, 濠엔 핵잠 기술 제공
‘역외균형’ 본격 가동하면 핵무장 허용할 수도
이철희 논설위원
중국 인민해방군 농구 선수 출신으로 홍콩에서 무역회사로 성공했다는 ‘붉은 자본가’ 쉬쩡핑. 1997년 초호화 빌라를 사들이고 거창한 곡예 이벤트를 벌이는 별난 거부(巨富)로 뉴스의 인물이 됐다. 우크라이나에 처박혀 있던 옛 소련의 미완성 항공모함 ‘바랴크’를 사서 해상 카지노로 쓰겠다는 그의 계획은 기발해 보였다. 거액의 뇌물과 중국산 독주를 동원한 향응 끝에 성사시킨 거래가는 2000만 달러. 하지만 그 뒤엔 몇 배 비싼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 45t 분량의 설계도 서류와 기름칠 잘된 새 엔진을 제공받는 것이었다.

축구장 3배 크기의 항모를 중국으로 옮기는 데만 4년이 걸렸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터키를 지나기 위해선 중국 지도부가 나서 내밀한 외교적 거래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항모는 2002년 다롄 조선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중국은 7년을 더 기다렸다. 미국과 주변국의 경계심을 우려한 시간 벌기였을까. 녹슨 선체를 닦아내고 페인트칠한 뒤 눈요깃거리로 방치해 뒀다.

마침내 2009년, 중국은 그때까지 남겨뒀던 바랴크함의 옛 깃발과 이름을 제거하고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2년 중국 최초의 항모 랴오닝함을 취역시켰다. 15년에 걸친 비밀 공작과 외교전, 오랜 기다림의 산물이었다. 그 이전까지 중국은 근해 방어에 주력하며 눈에 띄지 않는 비대칭 전력, 이른바 ‘암살자의 철퇴(殺手7)’ 개발에 주력했다. 세계 최대의 기뢰(機雷) 전력과 잠수함 함대, 세계 최초의 ‘항모킬러’ 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됐다.

그러던 중국이 원거리 대양작전용 항모를 갖기로 한 것은 국가 전략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국식 자본주의의 쇠퇴로 본 중국은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던 전략에서 벗어나 이제 할 일을 적극 하겠다며 자기 억제의 고삐를 풀고 일대 전환에 나선 것이다. 이후 중국은 맹렬한 속도로 새 항모 제작에 나섰고 핵추진 항모까지 개발하고 있다. 대잠전과 대공전, 상륙전 능력도 키우며 해외 기지까지 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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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은 중국의 거침없는 군사굴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래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지만 그것은 중국의 경제적 팽창 억제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군사적 견제는 우발적 충돌 같은 위험 부담 탓에 장기 전략 차원의 조심스럽고 제한적인 대응에 그쳤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접근법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지난달 미국이 영국과 함께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을 제공하겠다며 ‘오커스(AUKUS) 동맹’을 출범시킨 것은 그 변화를 상징한다. 늑대외교라 불리는 중국의 강압적 행태에 분개한 호주의 요청에 따른 것이고 핵무기가 아닌 핵추진 기술에 한정됐다지만, 그간 미국이 고수해 온 핵확산 방지 원칙에 역행하는 이례적 조치다. 따지고 보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군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전면 해제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외신들은 핵무기 보유국도 아닌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 핵잠수함도 없는 한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주목한다. 역내 국가가 먼저 주도적으로 나서 잠재적 패권국을 견제하게 하는 강대국의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이 가동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정치 학자들이 꼽는 역외균형의 가장 효율적 수단은 핵무장 허용이다. 한국의 핵무장도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제라도 감당해야 할 미래일 수 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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