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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진짜들이 사는 모습[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1-10-06 03:00업데이트 2021-10-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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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미하라 미쓰히로 감독 ‘행복의 향기’
이정향 영화감독
일본 어촌의 작은 식당. 제철 음식으로 꾸민 백반을 팔 뿐인데도 항상 동네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흔 살의 주인 왕 씨는 중국 상하이에서 도쿄의 호텔 주방장으로 스카우트된 실력가였지만 따돌림을 당해 그만두고 한적한 바닷가에서 능력과는 걸맞지 않게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 백화점에서 큰 이윤을 보장하며 입점을 제안하지만 왕 씨는 단칼에 거절한다. 백화점 직원인 다카코는 그를 설득하려다 그의 음식에 반해 매일매일 백반을 먹으러 오는데, 어느 날 왕 씨가 쓰러진다. 가족도, 후계자도 없는 왕 씨는 40년 동안 운영한 식당을 폐업할 수밖에 없다. 왕 씨의 솜씨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한 다카코가 백화점에 사표를 내고 그를 찾아온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직업은 소방관, 강력반 형사, 그리고 요리사다. 매일 식구들의 밥을 짓는 주부들도 해당된다. 인류의 존속은 올바른 섭식에 달려 있기에 요리는 정말 중요하다. 나는 라면 하나도 맛없게 끓이는 기막힌 ‘똥손’을 가졌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재주가 있으니 바로, 좋은 식당을 알아보는 본능. 친구들은 내가 보라는 영화는 안 봐도, 내가 가라는 식당은 반드시 가본다. 좋은 요리는 정직하다. 요리에는 술수가 통하지 않는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표가 난다.

자신이 만드는 요리처럼 올곧게 살아가는 왕 씨를 보며 다카코는 요리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처럼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다카코. 왕 씨는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손님들의 곁에서 요리를 하고 싶기에 분점은 절대로 내지 않겠다던 왕 씨. 그가 원한 건 돈이 아니라, 자신의 음식을 행복하게 먹는 단골들의 모습이었다. 세속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집과 누가 뭐라 해도 자신만의 철칙을 고수하는 이들은 남이 아닌 자신과 경쟁하며,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또한 삶의 규모도 군살 없이 단순하다. 이렇게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는 정직하다.

마침내 다시 식당 문을 열게 된 날. 왕 씨와 다카코는 성공적인 하루를 끝내고, 자축할 겸 지친 몸을 한잔 술로 위로한다. 둘 사이엔 칭찬도, 자랑도 오가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왕 씨가 술을 따르는 소리만이 정갈하고 품위 있게 들린다. 몇 년 전, 일본 나고야의 가장 좋아하던 우동집이 50년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좌석 몇 개 없는 작은 가게였지만 세상의 모든 우동집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밤, 아쉬움과 호기심으로, 영업이 끝난 가게 안을 엿봤다. 가족끼리 운영하던 식당이라 북받치는 감정의 홍수를 예상했던 나는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마감한 듯 조용히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는 모습에 당황했다. 진짜들은 요란하지 않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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