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하나 짓고 140배 빼먹은 아프간… 美 도움에도 자립 못해”[이진구 기자의 對話]

이진구 기자 입력 2021-09-06 03:00수정 2021-09-06 09:3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진기훈 전 주아프간 대사
설사 미군이 남아 있다 해도 아프간을 지킬 수 있었을까. 진기훈 전 주아프간 대사는 “이미 전 국토의 대부분을 탈레반이 장악하고 카불만 섬처럼 남아 있는 상태였다”며 “철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미군만으로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진구 기자
《오죽하면 원조받은 돈의 절반만 제대로 썼어도 카불은 두바이가 됐을 거란 말이 나왔을까. 미국이 국익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을 버렸다는 비난도 있지만, 지켜주려야 지켜줄 수 없을 정도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면…. 진기훈 전 주아프간 대사는 “20년간 그 많은 돈을 지원받고도 작은 공장 하나 없을 정도로 아프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0월∼2018년 1월 아프간 대사, 이후 지난해 말까지 인접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를 지내며 아프간이 곪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거두절미하고, 얼마나 부패했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에서 특별검사가 와서 지원한 돈과 물자가 제대로 집행되는지 감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주유소 하나 짓는 데 통상 드는 비용의 140배를 빼먹었다고 하더라. 주유소 140개 지을 돈으로 한 개 지은 거지. 고스트 폴리스(ghost police)라고는 들어봤나?” (군인의 태반이 유령군인이라고 하던데 경찰도 그런가.) “아이고, 경찰이 더하다. 우리 같은 경찰이라기보다는 준군인에 가까운데, 아프간 사람들은 군인은 전방에서 싸우는 사람, 경찰은 후방에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탈레반과 싸운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지원을 받았는데 거의 다 허투루 쓴 거지. 내무부 차관이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경찰개혁을 할 수 있냐고 고민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국제사회의 엄청난 원조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국민 중에는 원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등록된 군인 30만 명 중 25만 명이 유령군인이라고 한다.

주요기사
―미국이 지원한 돈만 2조 달러가 넘는데 못 느낀다니….

“미국이 그러더라. 아무리 지원해줘도 아프간 중앙은행에 달러가 안 쌓인다고. 예를 들면 국제기금에서 들어온 돈으로 월급을 주는데 그걸 자루에 넣어 인출한 뒤 외국으로 보낸다. 돈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와야 그 돈으로 공장도 만들고 산업을 일으킬 텐데 다 증발해 없어지는 거다. 아프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철도도, 고속도로도, 기업도…. 수도에 중앙역이 없으니까. 그리고 원조 방식도 구조적으로 누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서 떼먹는 경우가 많은가.

“워낙 위험한 곳이다 보니 각 나라가 국제기구로 돈과 물자를 보내면, 국제기구는 그걸 아프간 현지 NGO로 내려보내고, NGO가 집행하는 방식으로 원조가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아래에서 새는 게 굉장히 많다.” (국제기구에서 모니터링을 안 하나.) “너무 위험해서 현장까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국제사회도 그렇게 철저하게 모니터링을 하려고 하지는 않더라.” (우리도 20년간 1조 원이 넘게 지원했는데….) “나름대로 확인해 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우리 국민 세금이니까 당연히 확인할 권리도 있고. 그런데 각 나라가 지원한 돈을 합쳐서 주다 보니 우리 돈만 어떻게 쓰였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현장에 가본 적도 있지만 그 정도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아프간 정부 고위층은 20년 동안 뭘 한 건가. 탈레반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죽는 게 자신들인 걸 모를 리가 없지 않나.

2016년 1월 진기훈 대사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보면서도 안타까웠던 게… 장관이나 고위 관료들을 만나 보면 의식 수준이 받쳐 주지 못했다. 힘들고 어려워도 어쨌든 작은 공장이라도 만들어 스스로 먹고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냥 원조 받아 나눠 먹는 식이니까. 지방은 사병을 거느린 군벌들과 탈레반 때문에 행정력이 안 미친다. 행정력이 안 미치는데 원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나라를 바꿔 보고 싶어 했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돈 싸들고 해외로 도망갔다고 욕을 먹던데….) “그런 뉴스가 나오긴 하던데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닌 것 같고… 대통령 한 사람 힘으로 상황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지 않나 싶다.”

※가니 대통령의 전임자인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마약 단속을 요구했다가 “당신 동생이나 잘 단속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 별명이 ‘마약왕’이었다.

―당신은 국제사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자립할 수 있게 산업화 기반을 마련해 주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냥 밥을 먹여주는 식이 많았으니까. 미국도 엄청난 돈을 퍼부었지만 군사 부분을 제외하면 주로 민주주의 보급, 인권, 여성의 지위 향상 이런 분야에 지원을 많이 했다.” (필요한 지원 아닌가?) “중요한 분야지만 먼저 먹고사는 것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 아닌가. 아프간 여성들의 처지가 워낙 참혹하다 보니 여성 인권도 중요하고, 민주주의를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뭔가를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그래서 미국에 물어봤다. 너희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이래야 워싱턴에서 먹힌다’고 하더라. 그래야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혹시 연락되는 아프간 고위층이 있나.

“얼마 전 친하게 지냈던 여성 국회의원이 비서를 통해 메일을 보냈다. 지금 카불에 숨어 있는데 탈출하는 걸 도와달라고…. 국회의원 교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도 왔던 사람이다. 안타깝기는 한데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어서 일단 파키스탄으로 피신한 뒤에 연락하라고 했다. 아프간 사람들은 파키스탄에 뭔가 하나씩은 끈이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로 오는 방문 비자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재직 시 알던 다른 고위층 인사들에게도 전화를 해봤는데 신호는 가는데 받지는 않았다.” (우리는 전투병을 파병한 것도 아니고 원조만 했는데 왜 우리를 도운 현지인들까지 목숨이 위험한 건가.) “내가 있을 때도 요리사, 운전기사, 비서 등 대사관에서 일하는 아프간 직원들은 늘 협박 전화를 받았다. 외세에 부역했으니 가만 두지 않겠다는 거지. 미국과 가까운 나라는 더 그렇게 여긴다.”

―우리 대사관에서 6월 20일까지 우리 국민은 모두 철수해 달라고 공지를 했는데 왜 아프간 협력자들은 두 달 후에야 데리고 들어온 건가.

“지금 상황은 나도 잘 모르는데… 내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철수하는 매뉴얼은 있었지만 협력자들까지 단계적으로 어떻게 대피시킨다는 계획은 없었다.” (협박까지 받는 걸 안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갑자기 붕괴될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탈레반과 협상해 어느 정도 평화가 보장되는 상태는 만들어 놓고 나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협력자들까지 어떻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 거지. 내 입으로 현지 직원들에게 한국은 전투도 안 하고 원조만 했으니 탈레반이 들어와도 당신들은 안전할 거라고 말했으니까.”

―대사관 직원들은 어떻게 생활을 했나. 외출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우리를 직접 대상으로 한 테러는 없지만 묻지 마 테러를 당할 수 있어 외출은 거의 안 한다. 갑자기 옆에서 폭탄 조끼를 입은 사람이 터지거나, 양 몸통에 폭탄을 감은 뒤 터뜨리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미 대사관에서 주재하는 회의나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정도가 전부다. 사실 갈 데도 없다. 일본 대사는 허리띠에 여권하고 3000달러를 차고 있더라. 외부에 있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공항으로 가라는 거지. 대사관 외부는 아프간 경호업체와 경찰이 경비를 서고, 내부는 무장한 한국 민간경호회사가 지켰다.” (무장? 테러범을 가스총으로 막을 수는 없을 텐데….) “파병됐던 오쉬노 부대원 20여 명이 잠시 대사관을 지킨 적이 있는데 철수하면서 두고 간 총과 실탄이 있었다.”

―군대가 총과 실탄을 두고 갔다는 건가.

“군용기가 아니라 민항기로 귀국하기 때문에 총기 반입이 안 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 내가 부임하니까 그 상태였다. 대사관 경비를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한데 한국에서 총을 가져올 수도 없고, 현지에서 사려면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국방부, 외교부, 경찰청 등과 협의해서 그 총을 경호회사에 무상 임대하는 방식으로 제공했다.” (로켓 포탄은 어떻게 대비하나.) “한 달에 한두 번은 늘 대피 경보가 울렸다. 미국이 카불 상공에 레이다가 설치된 대형 풍선을 띄운 게 있다. 그걸로 로켓 발사를 파악해 각 대사관에 경보해 준다. 그러면 지하실로 대피하는 거지. 그런데 경보음이 울리면 우리나 다른 나라 대사관에서 더 겁냈다.” (우리에게 쏘는 건 아닐텐데….) “우리랑 미국 대사관은 200m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런데 탈레반의 로켓 거치대가 정교하지 않아서 늘 엉뚱한 데 떨어진다. 일본 대사관 유리창에 맞았는데 방탄유리라 뚫지는 못하고 마당에 떨어진 적도 있다.” (미국·일본대사관 유리창은 방탄인가?) “방탄이다.” (우리도?) “우리는 아니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진기훈 전 주아프간 대사#아프가니스탄#부패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