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인기는 한순간… ‘어펜저스’ 띄우기에 취하지 말아야”

이진구 기자 입력 2021-08-23 03:00수정 2021-08-23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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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펜싱 금메달 김정환 선수
금메달은 화려하지만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중에는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훈련을 하는 선수들도 많다. 김정환 선수는 “후배들에게 펜싱도 잘하기만 하면 야구나 축구처럼 얼마든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홍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진구 기자
《21세에 떠오르는 신성이라며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도핑테스트에 걸려 1년간 자격 정지. 세계 랭킹은 184위까지 곤두박질쳤고, 급기야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안 풀려서 ‘군대나 가자’ 하고 입대했는데 제대하니 서른. 도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 김정환(38·국민체육진흥공단)은 “남들은 운동을 접을 나이인데 그때야 비로소 펜싱이 뭔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례지만 메달을 많이 따서 군 면제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제대한 뒤 딴 거라…. 대학 졸업하고 실업팀에 있다가 2010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했지요. 마침 그해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열렸는데 금메달을 따면 조기 제대할 수 있었지만 1점 차로 져서 못 했습니다. 그 당시 너무 안 풀려서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러면 상무에서 일반 부대로 이동되기 때문에 못했어요. 20대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도핑검사에 걸려 자격정지 받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조기 제대도 실패하고…. 운동을 그만두려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 일들을 오래 겪어서인지 지금은 경기에서 이기건 지건 별로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도핑테스트에는 왜….) “2005년 SK텔레콤 서울 국제그랑프리에서 우승했는데 경기 후 도핑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메달이 박탈되고 1년간 선수 자격 정지를 받았어요. 불안감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그게 탈이 된 거죠.”

※그는 우리 나이로 서른인 2012년 런던 올림픽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 동,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개인전 동, 단체전 금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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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선수가 복귀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나이도 출전 선수들 중 두 번째로 많았다고….

“그렇게 거룩한 이유 때문에 한 건 아닌데… 은퇴하고 1년 몇 개월 정도 지났는데 성취감도 없고 좀 무료했어요. 왠지 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던 아내가 ‘오빠는 저 정도는 해?’라고 묻더군요. 후배인 (오)상욱이, (김)준호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뉴스였어요. ‘당연하지’라고 했는데 ‘아∼ 그래?’ 하면서 안 믿는 눈치더군요. 아내는 제가 국가대표 할 때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 말이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르는데… ‘왕년의 선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려고 ‘컴백’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 아닙니까?) “제가 지고는 못 살 정도로 승부욕이 좀 과해요. 다트 500점 깨려고 한 달 넘게 다트장을 드나든 적도 있으니까요. 수십만 번을 던지다 보니 나중에는 숟가락도 못 들 정도로 팔이 아프더군요. 나중에는 아예 다트 기기를 샀습니다. 사람들이 들으면 유치하다고 웃지요.”

―펜싱이 유럽 국가들의 텃세와 편파 판정이 굉장히 심한 종목이라고 하던데 도쿄에서는 어땠습니까.

도쿄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 준결승 독일전에서 공격하는 김정환 선수(왼쪽). 동아일보DB
“펜싱이 그런 게 좀 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15점(개인전 점수) 내고 이길 생각하지 말고 아예 20점 낸다고 생각하고 경기하라고 합니다.” (개인전 4강에서 이탈리아 루이지 사멜레에게 역전패하지 않았습니까?) “판정으로 진 부분 중에는 제가 이긴 부분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항의는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상대 쪽으로 넘어갔고, 그 기세를 이기지 못했지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왜 항의를 안 한 겁니까. 보통 감독이 작전 차원에서라도 항의하며 흐름을 끊지 않습니까?) “올림픽에서는 항의할 수 없는 게 룰이에요. 다른 국제대회에서는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감독들이 의자도 집어던지고 강하게 항의하는데, 올림픽은 전 세계에 중계되기 때문에 조직위에서 아예 못 하게 해요.”

※그는 12―6으로 앞서다가 연거푸 9점을 내줘 역전패했다. 누가 득점했는지 따져보는 부분에서 심판은 모두 사멜레 손을 들어줬다.

―코로나19 때문에 훈련도 전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선수촌이 아주 고급스러운 감옥이 됐다고 할까요? 하하하. 전에는 선수촌 앞에 마트라도 다녀올 수 있었어요. 주말에는 외박도 되고. 그런데 이번에는 5개월 정도 진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지요. 전 아직 신혼인데….” (밤이 힘들었습니까.) “하하하, 뭘 그런 걸…. 도쿄에서는 재수 없게 자동 기권으로 쫓겨나면 어떡하나가 가장 걱정이었지요.” (자동 기권요?) “매일 아침 긴 플라스틱 통에 침을 뱉어서 제출했는데 만약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자동 기권으로 처리되고 나와야 해요. 그래서 아침마다 굉장히 떨렸어요. 침도 물로 입 막 헹구고 뱉고…. 외국 선수 중에 검출돼서 중간에 나간 사람이 실제로 있었으니까요.”

―일부 비인기 종목은 국가대표도 아르바이트하며 훈련해야 한다고 하던데… 비인기 종목이라 겪은 서러움은 없었습니까.

“비인기 종목이라서는 아닌데…. 런던 올림픽 때 함께 출전한 오은석 선수는 침대가 없어서 소파에서 잤지요. 제가 생각해도 올림픽 규정이 좀 이상한데…. 단체전은 3명까지만 TO(table of organization·규정으로 정한 인원)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도쿄에서 4명이 뛰고 모두 메달을 받지 않았습니까.) “쉽게 말하면 주전은 3명이고 나머지 한 명은 교체 선수로 보는 거죠. 만약 교체 없이 경기를 치르면 시상대에 3명만 올라가요. 나머지 한 명은 메달을 안 주는 거죠. 그래서인지 선수촌도 3명만 들어가고, 나머지 한 명은 외부 숙소에서 자면서 훈련장으로 출퇴근해야 해요.” (함께 갔는데 입장이 곤란했겠습니다.) “그래서… 인정상도 그렇고, 팀워크 문제도 있고 해서 대회조직위에 제발 입촌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사정했지요. 그랬더니 정말 들어오게만 해주더라고요. 침대는 안 주고.”

―일본에서는 어땠습니까.

“규정대로 하면 준호가 외부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데 요청했더니 입촌시켜줬어요. 골판지 침대라 (싸서) 그런지 침대도 주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본인이 펜싱 선수 출신 아닙니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외국, 특히 유럽 선수들은 우리처럼 팀워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단체전 4명이 각자 코치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어떨 때는 경기 중에 자기들끼리 싸우더라고요.”

※바흐 위원장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메달을 못 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16개국 중 우리 랭킹이 꼴등이었어요. 그런데 1등을 했지요. 올림픽은 그런 곳이에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약에 동메달 결정전에서 지면 4등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어떻게 가지?’였어요. 눈앞이 캄캄해지고…. 후배들도 경험이 적으니 ‘형, 지면 어떻게 하죠?’라며 걱정이 많았지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지금 사람들이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라며 띄워주는 거에 취하지 마라’고 했어요. 은메달 따면 오히려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고. 우린 잘해야 본전이니 이집트도 쉽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다그쳤지요.” (이집트가 좀 못합니까.) “보통 외국에 나가면 미리 몸 안 풀고 이집트랑 경기하면서 몸 푼다고 생각하니까요. 런던 올림픽에서 독일이 우리를 그렇게 대했다가 우리에게 졌지요. 자만은 정말 무서워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예상외로 이집트와 초반에 5―6, 6―6 이렇게 가면서 고전했어요.”

―쟁쟁한 프로그램들에서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하던데, ‘도시어부’도 나가더군요.

“낚시를 엄청 좋아해서…, 올림픽이 끝난 직후라 출연 요청이 많기는 해요. 그런 면에서 나잇값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들에게 이것도 다 한때의 바람이니 너무 취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제가 어릴 때 어쩌다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어? 국제무대 별것 아니네?’ 하고 자만했어요. 그 뒤로 앞서 말했듯이 안 좋은 일이 막 겹치면서 곤두박질쳤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까지 7, 8년이 걸렸지요. 그래서 좀 진부하지만 후배들에게 늘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진다’고 얘기합니다. 펜싱 선수는 경기장 밖이 아니라 ‘피스트(piste·펜싱 경기대)’ 위에서 검으로 빛나야 한다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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