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체계 흔드는 기본소득, ‘줬다 뺏는’ 기초연금 시즌2 [광화문에서/유근형]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입력 2021-09-04 03:00수정 2021-09-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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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우리가 속았다. 이건 완전히 사기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대표 복지 공약인 ‘기초연금 20만 원’이 시행되자 노인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고 사실상 그대로 뱉어내는 노인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잡히면서 생겼다. 기초연금을 받은 만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비 지원금(급여) 등 다른 복지 혜택이 줄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비판이 시작된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복지 확대를 외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초연금은 최대 30만 원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그야말로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다반사. 약 6만 명의 저소득 노인은 다른 복지 혜택이 줄어들 우려에 기초연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초연금을 시행한 지 5년이 지난 2018년까지도 노인 빈곤율(42%)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도 이런 요인 때문이다.

비슷한 논란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표 공약인 안심소득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심소득은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에 미달되는 부분을 서울시가 일부 지원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전 국민에게 살포되는 복지보다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추진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안심소득도 ‘소득’인 만큼 다른 혜택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사업 대상을 축소하고 시범사업 형태로라도 추진하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복지를 심의하는 보건복지부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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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소득법을 통과시켜 제도가 시행된다고 가정해 보자. 현 복지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기본소득만큼 저소득층의 복지 혜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줬다 뺏는’ 기본소득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기존 복지는 그대로 두고 기본소득만 더 주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9년 기초연금을 실질소득에 포함하는 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가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인정한 만큼 기본소득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이 지사가 헌재가 제시한 원칙에 반하면서까지 기본소득을 밀어붙이면 사회적 논란과 비용이 상당할 것이다.

대선을 앞둔 현 시점의 기본소득 논쟁은 원론적이고 1차원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현실 적용 과정에서 벌어질 기술적인 문제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보건복지부 안팎에선 벌써 “기본소득이 강행되면 기존 복지 관련법을 얼마나 뜯어고쳐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본소득은 기존 제도들과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전체 복지 시스템을 흔들 것이다. 이미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득표를 위한 날림 공약을 넘어 신구 제도의 조화까지 면밀히 살피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의 시즌2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더 그래야 한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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