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와 연결될 때 평온해지는 선원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52>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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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가족을 떠나 바다에 혼자 떨어져 지내는 선원들은 육지와 연결되길 갈구한다. 육지와의 연결이라는 말만큼 선원 생활에 중요한 단어도 없다. 그래서 육지로 연결될 때 중요한 도구인 닻, 메신저 라인, 밧줄, 해상용무전기(VHF) 등에는 마치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오랜 항해를 한 뒤 선박은 항구에 닻을 내린다. ‘차르르’ 큰 소리를 내면서 닻줄이 내려가면 기분까지 청량해진다. 선박과 닻 그리고 바다 밑 흙이 연결된다. 이제 바다에서의 고립이 끝나고 사람이 사는 육지와 연결을 앞두게 되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진다. 최종적으로 선박이 부두에 정박하면 비로소 두 발로 걸어 육지로 나올 수 있다.

선박은 어떻게 부두에 붙일까? 부두에 접근해 약 50m 거리에 이르면 메신저 라인을 육지로 날려 보낸다. 메신저 라인은 아주 얇은 줄이다. 앞쪽에 무게추를 달아 빙글빙글 돌려 던지면 무게 덕분에 멀리까지 날아간다. 메신저 라인 뒷부분에 밧줄을 연결시킨다. 육지에서 메신저 라인을 잡아끌면 배에서 밧줄이 줄줄 풀려나가 육지에 있는 비트라는 곳에 걸리게 된다. 이렇게 밧줄 6개를 모두 연결하면 선박이 부두에 단단히 잡힌다. 첫줄이 나가는 시간을 선박 도착시간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갱웨이(gangway·통로)를 내리면 사람들이 오르내릴 수 있게 된다.

항해 중에는 육지 소식을 들려주는 단파방송이 친구다. 방송 주파수를 겨우 잡아 소식을 듣는다. 선원 여러 명이 옹기종기 방에 모였다. 가수 김상희 씨가 진행하던 KBS ‘파도를 넘어’는 외로운 선원 생활에 큰 위안이 됐다. 지루한 밤 항해 중 VHF로 “한국사람 나오세요”라 하면, “반갑습니다”라는 동포 선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서로 애환을 주고받는 방법도 있었다.

입항 때 받는 편지는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새롭게 승선하는 교대 선원보다 그가 가져오는 편지가 더 중요할 정도였다. 출항 때에는 편지를 보내야 한다. 외국에서는 우체국을 찾기도, 가기도 어렵다. 한꺼번에 모아 대리점에 편지를 부탁한다. 배가 이미 부두를 떠났다면 더 이상 편지를 보낼 수 없을까? 아니다. 마지막 방법이 있다. 선박을 항구 밖으로 안내한 도선사에게 편지를 부탁하면 된다. 외국 도선사가 과연 우리 편지를 한국까지 보내줄까, 걱정도 한다. 그러나 휴가를 가서 확인해 보면 편지가 도착해 있다. 의리를 지켜준 고마운 도선사다.

통신실에 가서 VHF로 한국 기지국과 연결해 통화하기도 했다. 육지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상대방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린다. 부산항과 쓰시마섬 사이를 지날 때가 선원들로서는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메일, 스마트폰,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일상화됐다. 바다에서의 고립된 환경은 예전보다는 많이 해소됐다. 그렇지만 육지에서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느끼는 단절감은 여전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선원들을 소중히 보호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육지#평온#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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