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치자 봄꽃은 속절없이 스러진다. 바람이 멎자 비로소 감지되는 흙내음, 낙화가 스민 뒷자리에 향긋한 기운이 번진다. 계절은 어김없이 오가고 풍광은 예나 다름없지만 그대 내 곁에 없으니 모든 게 그저 허망하기만 하다. 하여 몸단장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우두망찰 저무는 봄을 바라보고만 있다. 울적한 심사를 토로하려 해도 왈칵 눈물부터 쏟아지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듣자 하니 쌍계 개울은 아직도 봄빛이 좋다고들 하니 그곳에 배 띄우고 노닐면 행여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아서라, 조그마한 배 하나가 무슨 수로 내 깊고 무거운 수심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의 걸출한 여류시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청조. 여진족의 금나라에 북송이 멸망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며 유랑의 길에 나섰다. 피란지에서 평생 금석문(金石文·쇠붙이나 돌에 새긴 문자)과 고서화 연구를 함께 했던 첫 남편과 사별했고 재혼과 이혼도 경험했다. 시는 저무는 봄날에 대한 아쉬움에 빗대어 빛바랜 인생의 봄날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다. 개인적 불행과 시대적 아픔이 시인의 고적(孤寂) 너머에 절묘하게 아우러져 있다. ‘무릉춘’은 사(詞)라는 운문 형식에 사용된 곡명으로 시제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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