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문을 여는 64가지 비밀번호[Monday DBR]

쾅쾅쾅쾅. 운명은 장중하게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입장한 운명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변주되면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인간은 불안한 눈빛으로 운명을 바라본다. 옷매무새를 고쳐 매고 경건한 자세로 운명을 마주한다. 그리고 싸운다.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한 인간은 환희의 송가를 부른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고난에 찬 운명을 극복한 인간 베토벤의 삶을 음표로 옮겨놓은 것이다.

주역의 64괘도 운명의 행적을 기록한다. 주역 64괘는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와 같은 것이다. 주역의 괘는 ‘0’과 ‘1’ 두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0은 수축의 성질을 갖는 음(陰)의 상태를 기호화한 것으로 ‘--’으로 표시하고, 1은 팽창의 성질을 갖는 양(陽)의 상태를 기호화한 것으로 ‘―’으로 표시한다. 이 비밀번호를 살펴보면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운명을 좋은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주역에서 말하는 운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객관성과 보편성이다. 주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과학적인 운명 해설서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편견이나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이라는 보편적 실체를 근거로 운명을 해석하기 때문에 계층이나 계급, 빈부, 인종을 초월해 보편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다.

둘째, 주역이 말하는 운명은 탄력적이며 주기를 갖는다. 주역은 사람의 운명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듯 사람의 운명도 변하는 것이기에 비관론이나 숙명론으로 흐르지 않는다. 또한 주역에 따르면 해와 달이 규칙적으로 뜨고 지는 것처럼 운명에도 일정한 사이클이 존재한다.

셋째, 주역은 운명에도 뚜렷한 가치 지향성이 있다고 본다. 주역의 효사(점괘)에서 가장 많이 쓰는 한자가 ‘정(貞)’과 ‘부(孚)’이다. 정은 곧고 강인한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뜻하고, 부는 신뢰할 만한 의사결정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주역에서는 어떤 대상이 정하고 부하면 길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흉한 것으로 판별해 사람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가치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주역을 통해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고 변하게 할 수 있는 원리를 익히면 ‘내 이럴 줄 몰랐다’라든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와 같은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위에 놓이고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놓이는 괘를 ‘천지비괘(天地否卦)’라 한다. 주역에서는 양을 뜻하는 ‘1’과 음을 뜻하는 ‘0’ 두 숫자의 나열로도 괘를 표현하는데 천지비괘는 ‘111000’으로 나타낸다. 천지비괘는 상하 간의 소통이 꽉 막힌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1과 0의 위치를 바꾸면 괘의 의미가 180도 바뀐다. ‘000111’은 ‘지천태괘(地天泰卦)’를 의미한다. 위에 있던 하늘이 아래로 내려가고 아래에 있던 땅이 위로 올라가는 형상이다. 지천태괘에서 ‘태(泰)’는 소통이 매우 원활하게 이뤄지는 태평성세를 상징한다. 두 숫자의 위치를 바꾸는 간단한 조작 하나로 운명이 180도 바뀐 것이다.

조직 생활에서 위아래 사이의 소통이 막히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 이럴 때 숫자 위치를 바꿔 운명을 전환하는 주역의 원리처럼 작은 계기 하나가 필요하다. 아침 출근길에 만난 직장 상사나 부하 직원에게 건네는 간단한 인사말 한마디가 꽉 막힌 소통을 뚫어줄 수도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기복 없이 평탄한 운명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험한 운명을 만나더라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최고 영예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에 있다.” 운명을 바꾸는 일은 엄청난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와 같은 말 한마디로도 운명과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이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17호에 실린 ‘운명의 문을 여는 64가지 비밀번호’를 요약한 것입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