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개미’ ‘교복개미’가 한국 증시 기반 되려면[광화문에서/정임수]

정임수 경제부 차장 입력 2021-02-23 03:00수정 2021-02-2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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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친구 K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 이름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어 삼성전자 주식 3주를 선물했다. 양가 부모님에게서도 입학 선물 대신 용돈을 받아 주식을 더 사줄 계획이다. K만이 아니다. 최근 온라인 카페엔 “아이 입학 기념으로 주식 통장을 만들었다” “아이 세뱃돈 받은 걸로 주식을 사줬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적 주식 투자 열풍이 만들어낸 새로운 트렌드다.

K 같은 ‘엄마개미’ ‘아빠개미’ 덕에 지난해 새로 개설된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47만5000여 개에 이른다. 2015년부터 5년간 만들어진 계좌(32만 건)를 합친 것보다 많다. 올 들어서도 1월에만 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에서 8만 개가 넘는 미성년자 계좌가 새로 만들어졌다. 5곳에서 2019년 한 해 개설된 계좌는 1만 개가 채 안 됐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이 자녀 미래를 위해 은행 적금이나 청약저축을 들었다면 요즘 30, 40대 부모들은 주식에 주목한다. 치솟는 집값, 주가 속에 월급만 차곡차곡 모았다가는 ‘벼락거지’ 신세가 되는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 고금리 시대 저축만으로 자산을 불렸던 베이비붐 세대는 자식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길 원했지만, 초저금리를 경험한 3040세대는 자녀들이 일찌감치 돈 관리에 눈뜨길 바란다.

자발적으로 주식 투자에 나서는 10대도 많아졌다. 온라인엔 “주식을 하려는 10대인데 책이나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 달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자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거래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영향이 크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뉴스나 유튜브에서 ‘게임스톱’ 얘기가 증가하자 부(富)에 관심을 갖고 투자에 나서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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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실전 투자는 생활 속 경제 교육을 뿌리내리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금융 교육은 책보다 체험이 효과적이다. ‘금융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가 뒷받침된 주식 투자만큼 경제 현상과 기업 활동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도 없다. 아이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분산 투자를 하는 경험을 쌓는다면 한국 증시의 고질병인 단타 매매, 과도한 기대 수익 등의 문제도 줄일 수 있다.

걱정은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육열은 높지만 정작 살아가는 데 필수인 금융·경제 교육은 방치한 탓이다. 그래서 ‘꼬마개미’ ‘교복개미’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증시 변동성이 심한 상황에서 투자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주식에만 몰두해 시세창만 들여다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어린 자녀가 단순히 수익률만 높이는 투자를 배운다면 주식으로 돈 버는 것이 다른 일을 성실히 해서 돈 버는 것보다 쉽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주식 투자를 통해 기업의 위상과 경제 메커니즘을 체득하는 자녀 세대가 많아질수록 한국 경제와 증시의 기반은 탄탄해질 것이다. 자녀 개미들이 ‘주린이’(주식+어린이 합성어)에 머물지 않고 혁신 기업과 엉터리 경제 정책 등을 가려낼 ‘스마트 개미’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은 부모 세대의 몫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한국 증시#주식 계좌#미성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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