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학자 도운 독립투사들…세한도로 본 한일교류 해법[광화문에서/김상운]

김상운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2-01 03:00수정 2021-02-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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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문화부 차장
“완당(추사 김정희의 다른 호) 선생의 필력이 얼마나 웅건했는지 족히 볼 수 있지요.”

지난달 30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세한도(歲寒圖) 특별전’을 둘러보다 일제강점기에 장택상(1893∼1969)이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 경성제국대 교수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장택상이 누군가. 그는 대한민국 초대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고미술품 수집가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추사의 마지막 글씨(판전 탁본)를 촬영한 사진을 편지와 함께 일본학자에게 보내며 추사 연구를 도운 것이다. 위당 정인보(1893∼1950)도 후지쓰카의 작업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과 일본학자의 이 ‘특별한 교류’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중국철학을 전공한 후지쓰카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2년간 청나라 고증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추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청 학자들의 편지와 서책 곳곳에서 추사에 대한 언급을 발견한 것. 이때부터 그는 추사의 학문세계에 매료돼 글씨, 그림 등 온갖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학계에선 추사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인이자 학자로 재평가된 건 후지쓰카의 집요한 연구 덕분이라고 말한다. 일본학계는 1936년 그가 발표한 ‘이조에서 청조 문화의 이입과 김완당’ 논문에 대해 “단지 조선의 금석학자로만 알려진 추사가 실은 청조 학술의 정수에 정통한 경학의 대가임을 논증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조선의 학문을 중국 주자학의 아류 정도로 취급하던 당시 일본학계의 시각과 배치된다.

이번 세한도 전시에서 장택상, 정인보와 후지쓰카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건 최근 한일문화 교류가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일례로 최근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해체보수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걸로 추정되는 붉은색 말 그림을 발견하고도 이를 제거하지 못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미술품 수집가인 후지타 가문이 우리 문화재 당국의 조사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전지법의 쓰시마 불상 도난사건 판결과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인해 일본의 문화재 소장자들이 한국의 협조 요청에 부정적인 탓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말 ‘아시아 칠기(漆器)’ 특별전에서 일본 측 유물 대여를 검토했지만, 코로나 사태와 한일관계 여파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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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일문화 교류가 차질을 빚으면 우리 쪽이 아쉬울 게 더 많다. 고문헌 등 국내 주요 문화재들이 일본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징용, 위안부 피해자 등 한일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지만, 순수 문화 교류만큼은 지속됐으면 하는 이유다. 후지쓰카는 광복 직전 자신의 일본 자택을 찾아온 서예가 손재형에게 추사의 걸작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조건 없이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한도를 다시 조선으로 보내는 건 소전(손재형)이 조선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성심에 감탄한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추사를 사숙(私淑·존경하는 사람의 학문을 배우는 것)한 동문 아닙니까.” 세한도를 둘러싼 한일 문화재 애호가들의 ‘아름다운 교류’가 현재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독립투사#한일교류#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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