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사본부, ‘한국의 FBI’가 될 수 없는 이유[오늘과 내일/정원수]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1-01-20 03:00수정 2021-01-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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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보다 더 신중하고 공정하게 선발해야
외압 막을 권한 없다면 ‘경찰의 실패’ 될 수도
정원수 사회부장
12일 밤 경찰청 교육정책담당관실은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전날 마감한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외부 공개 채용 지원자 5명 전체의 실명이 통째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마감 당일 경찰은 “절대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하루 만에 허언이 됐다.

경찰청은 1일부터 11일 오후 6시까지 국가수사본부장을 공개 채용하기로 하고, 모집 공고를 냈다. 10년 이상 수사 업무에 종사한 총경 이상 경찰 공무원, 10년 이상 경력의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이 지원할 수 있었다. 경찰청은 지원자가 몰릴 것에 대비해 지원자가 8명 이상이면 서류심사 단계에서 고득점순으로 7명을 추릴 계획이라고 사전에 공지했다. 하지만 지원자는 단 5명뿐이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전국 경찰 12만 명 중에서 형사와 수사, 사이버, 안보 분야의 약 3만 명을 지휘할 수 있는 요직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직원이 3만2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제복 조직인 경찰에서 국가수사본부장은 치안총감인 경찰청장 바로 아래 직급인 치안정감이다. 수사에 관한 한 같은 직급의 서울경찰청장 등 시도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권도 갖는다. 한국의 FBI 국장이라고도 불리는 자리가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무엇보다 권한과 신분 보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경찰 간부에게 “왜 지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실질적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껍데기 자리’ 아니냐”고 답했다. “오히려 경찰청장에게 ‘방패막이’가 하나 생긴 격”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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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장의 권한 등이 적힌 관련 법규를 찾아보면 이 발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청장이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해 서면 지휘하는 사건 외에는 전권을 갖고 수사 지휘를 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수사 착수나 진행, 종결 사항 등은 경찰청장에게도 보고된다. 경찰청장은 수사 내용은 파악하고 있지만 수사의 총책임자가 아니어서 부실 수사에 책임질 일이 없다. 예를 들면 과거 경찰 총수가 사과하고 사퇴한 ‘오원춘 사건’에 대해 경찰청장은 “개별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휘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신분 보장도 미흡하다. 국회의 탄핵이 없다면 임기 2년을 보장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추천과 검증의 투명성, 공정성, 중립성 확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외부 공모를 하고도 경찰청 심사에서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면 내부 발탁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첫 공모에서 전직 경찰 간부 2명과 변호사 3명이 지원했는데, 후보자 면면이나 자격을 놓고 경찰 내부에서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내부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래서야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을 제대로 선발했다고 할 수 있겠나.

추천과 검증 절차를 더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 내·외부 천거와 공개 검증, 복수 추천이라는 다른 공직 후보자 등의 선발 절차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도입해야 한다. 경찰 수사의 외압을 막을 최종 책임자라는 점에서, 그 직책도 ‘경찰수사본부장’이 아니라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점에서 인사청문 대상인 경찰청장 못지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FBI 국장 후보자는 연방대법관 후보자만큼 낙마 비율이 높을 정도로 인사 검증이 철저하다. “최선을 기대하고, 최악을 대비하라”는 법언이 있는데, 국가수사본부장에 대해선 최악을 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국가수사본부장의 실패는 곧 경찰의 실패가 될 수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국가수사본부#한국#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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