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내년 시행… 비상 걸린 산업 현장[논설위원 현장 칼럼]

허진석 논설위원 입력 2021-01-20 03:00수정 2021-01-20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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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노동계 모두 불만인 법 제정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 뒤인 14일 서울 중구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체형 작업발판(시스템 비계)’ 설치 전문가(왼쪽)가 시스템 비계의 안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업재해 중 가장 많은 사망 사고는 건설 현장 추락에서 나온다. 추락에 대한 대표적 안전장치가 시스템 비계이지만, 작업을 위해 난간을 잠깐 풀어 둔 동안 사고가 나는 등 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허진석 논설위원
말 많았던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대기업의 경영책임자뿐만 아니라 1000m² 이상의 음식점 목욕탕 PC방 등 대형 다중이용업소 주인을 처벌하는 ‘중대시민재해’ 조항도 담겼다. 처벌 수위가 높은 법이 나왔으니 안전이 담보될 것인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신분으로 설비점검에 나섰던 김용균 씨(당시 24세)가 끔찍하게 숨지는 비극이 있었다. 비슷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돼 지난해 1월 시행됐다. 처벌이 강화된 개정 산안법은 ‘김용균 법’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산업재해 중 업무상 사고 사망자는 860명(고용노동부 잠정 집계)으로 그 전해 855명보다 늘었다. 처벌만 강화한다고 해서 사고가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징역 1년 이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원청 업체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반면 원안에 있던 5인 미만 사업주 처벌은 빠졌다. 50인 이상 기업은 내년부터, 50인 미만은 2024년부터 적용된다. 재계와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망 최대 요인은 건설 현장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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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가 잠시 주춤했던 1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고층 건물 리모델링 현장. 1층에 들어서니 회색 벽면에 빨간색과 초록색의 LED 불빛이 반짝였다. ‘추락 주의!’ 그 아래엔 안전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다. ‘아빠! 안전을 먼저 생각하세요.’ 웬만한 건설 현장에선 업무 시작과 끝이 안전 교육일 정도로 안전은 제1순위다.

그럼에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의 절반은 건설 현장에서 나오는 게 현실이다. 2019년 업무상 사고 사망자 855명 중 428명(50.0%)이 건설업 종사자다. 제조업은 206명(24.1%)으로 그 뒤다. 건설 현장에서 가장 많은 사망 원인은 추락(떨어짐)이다. 2019년 건설업 산재 사망자 428명 중 무려 265명(62%)이 추락으로 사망했다.

추락 사고를 예방하려면 발판과 난간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래서 각광을 받는 것이 ‘일체형 작업발판(시스템 비계)’이다. 기존에 나무나 강관을 엮어서 사용하던 비계를 규격화해 안전성을 높인 것이다. m²당 240kg도 견딘다.

이날 방문한 리모델링 현장에서도 시스템 비계를 쓰고 있었다. 시스템 비계 위의 근로자 두 사람은 마치 복도에서 일하듯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시스템 비계도 사고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현장의 비계 설치 전문가는 “물건을 옮긴다고 잠깐 난간을 풀어두거나 시간에 쫓겨 안전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임의로 건물과 발판을 오가다가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에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개념이 있다.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기술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사고를 말한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예방하기가 매우 어렵다.

법 아랑곳 않고 되풀이되는 산업재해


중대재해법이 통과되던 당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의 한 폐기물 처리 사업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근로자 1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끼임 사고는 제조업 근로자가 가장 많이 사망하는 유형의 사고다. 2019년 제조업 사고 사망자 206명 중 66명(32.0%)이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12일에는 부산 수영구 광안동의 한 주상복합 신축공사장 9층의 비계에서 창틀 주변 방수작업을 하던 인부 1명이 자재 반입을 위해 난간을 풀어 놓은 곳으로 떨어져 사망했고, 13일에는 경기 파주시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새어 나와 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가 없더라도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이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2016∼2018년 자료로 ‘중대재해 유형별 현황 분석 연구’를 한 조윤호 한국산업안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고를 예측하거나 완벽하게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후처벌보다는 안전 관련 시스템 전체를 향상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자연인 처벌은 비합리적”


중대재해법은 안전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하한선이 있는 징역형은 고의가 있는 방화나 상해치사죄에 적용하는 것이어서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배의 가능성이 있다. 법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사고 사망자 규모를 감안할 때 수백 명의 기업인이 징역을 살 수도 있다. 경총은 회원사를 상대로 구체적인 보완 입법 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노동계는 원안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진 데다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경영책임자 등에 포함돼 오히려 사업주가 법망을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의 모태인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은 물론 어느 나라도 산업안전을 이유로 개인을 형사처벌을 하는 사례는 없다. 처벌은 산업재해 예방활동에 참여할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예방의 한계가 분명하니 법적 다툼으로 해결하려는 요인만 생기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자연인 처벌 조항으로 인해 법을 빠져나갈 방안에 더 골몰하게 만들고 있다”며 “법인에 징벌적 과징금을 매기는 것이 사고 예방에는 더 효율적”이라고 제안한다.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을 지낸 조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직업환경연구실장은 “한국에선 사업주의 한마디가 큰 영향력이 있다는 정서가 반영돼 사업주 처벌이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후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로펌만 살찌우는 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사고 예방의 책임이 큰 정부의 역할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방식은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런 식이라면 군대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군 통수권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도 보호해야”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막바지에 5인 미만 사업주는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영세사업장의 근로자는 고용과 임금, 복지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중대재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차별의 가중은 불가피해졌다.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80%를 차지한다”며 “노동조건에서 차별을 받는데 이제 죽음마저도 차별을 당할 처지에 내몰렸다”는 입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벌이 아닌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의 실마리는 보인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이 많은 5인 미만 사업주를 가혹한 처벌 대상에 선뜻 포함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재철 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5인 이하 사업주도 반드시 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전체 피해자는 2019년의 경우 3만2568명으로 전체 10만2305명의 31.83%를 차지했다. 5∼49명 사업체의 피해자 4만7554명(46.4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예외로 남으면 사업체를 4명 이하로만 잘게 쪼개는 편법이 활개를 칠 가능성도 높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했더니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 자리마저 빼앗는 일이 발생하듯 안전의 사각지대만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학계에서도 누더기 입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이 중대재해를 줄일 방안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입법 시한을 못 박으며 여론을 잠재우는 데만 신경을 썼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재 예방 인프라를 개선하거나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을 혁신할 진정성은 보이지 않고 여론에 밀려 처벌 만능주의에 빠진 법을 만들었다”고 했다.

모든 위험 살피는 ‘시스템 안전’ 필요


지금은 산업재해 예방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때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위험을 제거한다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 전 원장은 “단순 시설로 대량 생산을 하던 때에는 간단한 안전장치로도 재해 예방 효과가 컸지만 산업환경이 복잡해진 지금은 설계와 생산순서, 예산, 의사결정체계 등 상호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안전’ 개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크레인 붕괴 사고를 예방하려면 안전교육은 물론이고 재하청의 재하청으로 인한 예산 부족, 공기 단축에 따른 시간 부족, 동료와의 불화 문제는 없는지를 종합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건설 현장에선 아직도 시공 순서를 현장에서 임의로 결정하면서 발생하는 사고도 많다. 다행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정부의 책무에 대해선 유예 없이 공포 즉시 시행토록 하고 있다. 사업주 지원 및 종합 예방대책 수립·시행에 관한 것이다. 정부의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눈여겨 지켜볼 일이다.

논란 속에 탄생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어찌 됐든 우리 사회에 영향을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법 제정은 종착지가 아니라 지혜를 모을 출발선이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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