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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5부 사채 급전 빌려 직원 20명중 18명 내보냈다” [논설위원 현장 칼럼]

입력 2020-12-23 03:00업데이트 2020-12-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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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갑부들의 코로나 1년
서민갑부들에게 ‘사업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고 물었더니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장사하는 동안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걸 이겨내는 재미로 장사하는 거다. 어려움을 견뎌낸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왼쪽부터 고세곤, 최낙근, 하나금, 최영준 씨. 채널A 제공
이진영 논설위원
코로나19 사태로 552만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달리 민간 소비에 특히 치명적이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전국 소상공인 매출은 전년도의 71%라는데 이는 체감도가 떨어지는 평균치일 뿐 주변엔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많다. 채널A 장수 프로그램 ‘서민갑부’에 출연했던 성공한 자영업자들에게도 코로나는 매서웠다. 불면증에 속이 타들어가고, 사채로 버틴다고 했다. 올해는 그럭저럭 넘겼는데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밑바닥에서 시작해 외환위기에 사스 메르스까지 견뎌낸 이들이라 맷집이 달랐다.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모두 코로나 이후를 내다보고 있었다.

“돈 있어도 사람이 못 버티면 끝장”


고세곤 씨(40)는 ‘솜사탕 갑부’다. 천연색소가 들어간 설탕으로 토끼 오리 곰 모양의 알록달록 솜사탕을 만들었는데 이게 전국의 축제나 행사장에서 어린이와 연인들을 끌어모아 지난해엔 일본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올린 매출은 약 8억 원.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던 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억대 매출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려 0원이 됐다.

“처음 3개월간은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사스와 메르스 때는 혼자 솜사탕 기구와 설탕만 가지고 장사하던 때라 돈은 못 벌어도 나가는 돈이 없었어요.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서울과 오사카 사무실 임대료로 월 210만 원이 나갑니다. 서울 사무실 직원 6명 중 한 명만 남기고 다 내보내고 일본은 4명 다 내보냈어요.”

그는 소상공인 지원금으로 정부에서 100만 원, 일본에선 2000만 원을 받았다. 소상공인 긴급자금대출을 신청했지만 이벤트업자여서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신용대출 카드론대출 보험사약관대출까지 다 끌어모아 1억 원 넘게 만들고, 요리사 경력을 살려 메뉴와 레시피 컨설팅을 해주고 받는 부수입으로 버티고 있다.

“제가 잘못해서 생긴 일도 아니고, 제게만 닥친 불행도 아니죠. 안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코로나로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6세, 9세 두 아들을 제가 돌보는데 아빠가 같이 놀아주고 밥도 해주니 너무 행복해합니다.”

그는 그동안 구상만 하고 바빠서 실행하지 못했던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다. 새로운 솜사탕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천연 색소를 개발하고, 솜사탕을 접목시킨 새로운 음료도 준비 중이다.

“코로나가 내년 하반기까지 갈 거라고 각오하고 있어요. 지금껏 쌓아온 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버텨야죠. 돈이 버티는 것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사람이 못 버티면 끝입니다.”

“메르스 때처럼 도약 준비 시간”


최낙근 씨(53)는 출장요리 사업을 한다. 대학 축제, 회사와 동문회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취소되면 직격탄을 맞는 업종이다. 연간 10억 원이 넘던 매출이 올해는 1억 원 남짓으로 쪼그라들었다.

“2014년 세월호 사태와 이듬해 터진 메르스 때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2년 연속 부도 위기를 맞았어요.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심상치 않다는 감을 잡고 재빨리 가정용 온라인 판매에 집중했죠. 통돼지 바비큐를 6분의 1로 잘라 당일 배송합니다. 공장 지으려고 사둔 땅엔 캠핑장을 만들어 한 달 전 영업을 시작했어요.”

메르스 사태 땐 3부 사채를 썼는데 지금은 5부 사채를 쓴다고 했다. 직원 20명 중 18명을 내보냈는데 퇴직금에 3개월 치 월급을 얹어 주느라 급전이 필요했다.

“소상공인 긴급자금대출 1억 원을 받았는데 그걸로 모자랐어요. 매출이 없는데 누가 대출을 해주나요. 내년 2, 3월이면 긴급자금대출 상환이 시작되는데 아마 곳곳에서 곡소리 날 겁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후 가장 어려웠던 시절은 ‘주머니에 500원도 없었던’ 외환위기 때였다. 그때만큼만 하면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럴 땐 더 일찍 일어나 움직이고 작은 돈도 아껴야 합니다. 난로도 누군가 버린 걸 주워 고쳐서 쓰고 있어요. 배달은 두 아들이 하고, 캠핑장은 용접 전기배선 모두 애들 데리고 셋이서 했어요. 주방 정화조도 뚫으려면 30만∼40만 원 달라고 하기에 제가 들어가 처리했죠. 쓸 돈도 없지만 바빠서 돈 쓸 시간도 없습니다.”

그가 코로나 전까지 10억 원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메르스 위기를 잘 넘긴 덕분이다. 메르스 유행으로 일감이 끊기자 1년간 기계 개발에 집중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통돼지를 12마리까지 구울 수 있는 대용량 기계와 야외에서도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스팀기, 10m짜리 대량 꼬치구이 기계를 개발해냈고 그걸로 재기에 성공했다.

“메르스가 아니었다면 바빠서, 혹은 할 필요가 없어서 기계 개발은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지금도 부지런히 제품 개발하고 캠핑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어요. 코로나가 끝나면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도록.”

“남탓 말고 못 따라올 실력 쌓아야”


하나금 씨(59)는 3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꽃집을 운영하기 시작해 연매출 11억 원의 사업으로 키워냈다. 지금은 두 딸과 함께 꽃집 매장 7곳과 플라워 카페 3곳을 운영하고 있다.

“꽃집은 봄에 벌어 1년 먹고사는 사업이에요. 올봄은 그럭저럭 넘겼는데 내년 봄이 걱정입니다. 카페는 꽃집 비수기에 돈 벌려고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장사가 안 돼 20명 남짓 되는 직원들 월급 주기가 벅차네요.”

그가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한 계기는 백화점 입점이다. 상가 매장을 임대해 장사할 땐 매출이 없어도 임대료가 꼬박꼬박 나갔다. 꽃은 24시간 냉난방을 해야 해 관리비 부담도 컸다. 백화점 수수료 매장을 알아봤지만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브랜드를 만들어도 돈이 없으면 알릴 방법이 없어요. 궁리 끝에 45인승 버스를 꽃집으로 개조해 전국 꽃박람회장을 다니며 홍보했죠. 그 덕분에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 입점할 수 있었고 매출이 떨어져도 그만큼 수수료가 낮아져 부담을 덜게 됐어요.”

올해 매출은 예년보다 20∼30% 늘 것 같다. 꽃은 덜 팔렸지만 ‘흙’을 많이 팔았다. 20년 전 그가 흙에 광물질을 섞어 발명 특허를 받은 특수 흙은 물을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어 물이 고여 있어도 썩지 않는다. 화분 밑에 배수구가 없어 깔끔하니 인테리어용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특수 흙을 출시한 후 목돈을 만지나 싶었는데 비슷하게 흉내 낸 흙을 싼값에 판매하는 업자들이 고객을 빼앗아 갔다. 빈털터리가 돼 속을 끓이다 ‘이 사람들과 싸우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생산적인 일에 힘을 쏟자’며 털고 일어났다. 6년을 다시 매달려 개발한 특수 흙이 ‘리치 쏘일(rich soil)’이라는 브랜드로 매출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짝퉁 흙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제 흙을 업그레이드시켜 버린 거죠. 남들과 똑같아선 남들 이상이 될 수 없어요.”

그는 요즘 리치 쏘일을 활용해 무배수 농업으로 식용 꽃을 대량으로 키우고 있다. 성공하면 플라워 카페에도 공급하고 꽃차 등을 만들어 사업을 키울 생각이다.

“개구리가 뛰기 전에 잔뜩 움츠리잖아요. 저도 멀리 뛰기 위해 조용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언젠가 되는 날도 올것”


최영준 씨(38)는 경북 영덕에서 홀어머니와 횟집을 운영한다. 영덕의 대게는 2, 3월이 최고 성수기인데 하필 그때 코로나가 터졌다.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졌어요. 억수(엄청)로 힘들었지만 그동안 너무 달려와서 쉬라고 그러는 갑다(모양이다),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했죠. 방송에서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하는 횟집 뉴스를 접하고 저거다 싶어 얼른 따라 했어요.”

최 씨가 해산물 드라이브스루 영업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오전 4시에 일어나 건설 현장 인부들 새벽밥을 지었다. 직원 9명 중 6명을 내보내고 식당 옆 골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모자는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관광객만 바라볼 수 없어 택배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 남들과 비슷한 해산물로는 주문을 받기 어렵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던 그는 ‘머구리(어업잠수부)’가 됐다. 취미가 밥벌이가 된 것이다. 30kg의 장비를 몸에 걸치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수압을 견디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에선 벚굴을, 수심 50m 아래 모래와 바위 경계 지점에선 해삼을, 모랫바닥에선 백합을 따와 횟집에서 곁들임 상을 차리고 택배로 판매도 한다.

“산소 공급 장치와 연결된 호흡선이 배 스크루 날개에 걸려 빨려 들어가기 직전 줄을 끊어 겨우 탈출한 적이 있어요. 아차 하는 순간 가는구나 싶었죠. 하지만 제가 차별화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달리 방도가 없죠.”

머구리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 1억 원을 합쳐 올해도 예년 수준인 연매출 6억 원은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7년 전 오랜 암투병 끝에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떠난 후 어머니 혼자 유지하던 연매출 5000만 원 식당을 그가 머구리 일을 해가며 이만큼 키워 놓았다.

“올해는 태풍까지 세 번이나 불어 닥쳐 피해가 컸어요. 내년 대게 대목도 놓치나 싶어 걱정이네요. 그래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잠잠해지잖아요. 이렇게 안되다가도 언젠가는 되는 날도 오겠죠.”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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