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박애병원으로!’[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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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때 전국의 수많은 의료진은 “가자, 대구로!”를 외쳤다. 급증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던 대구시의사회가 SOS를 치자 이에 화답한 것이다. 늙었지만 쓰일 데가 있다면 써달라는 노(老)의사, “죽으러 가냐”며 말리는 딸을 뿌리친 어머니 의사도 있었다. 5급 지체장애인이면서 기초생활 급여로 생활하는 강순동 씨(46)는 7년간 모은 암보험을 깬 118만7360원을 대구에서 고생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기부했다. 강 씨의 선행 기사를 본 한 시민은 강 씨를 위해 같은 금액을 기부했고, 또 다른 시민은 직접 만든 밑반찬을 강 씨에게 보냈다. 사랑과 온정 바이러스는 코로나보다 강했다.

▷민간병원 최초로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으로 전환한 경기 평택 박애병원에 전국에서 의료진의 자원봉사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박애병원은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병상 대란이 목전에 닥치자 자발적으로 전체 병상을 소개(疏開)하고 전담병원으로 전환했다. 대규모 공사를 거쳐 24일부터 진료를 개시했는데 잠시 귀국한 기간에 달려온 의사, 고위험군에 속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며 자원한 노의사 등 사연도 가지가지다.

▷전담병원 전환을 결정한 김병근 박애병원장은 올 초 대구경북 지역의 1차 대유행 때 가장 빨리 자원봉사를 다녀온 인물이다. 병원 손실이 예상되는 등 전환에 따른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상황이 너무 심각해 이것저것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진료를 개시한 24일 전국에서 추가 확보된 병상이 176개인데 이 중 박애병원이 140개(중환자 20개, 준중환자 80개, 중등증환자 40개)에 이른다.

▷196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로세토 지역 주민들은 기름진 음식과 과도한 술, 담배, 열악한 노동 환경 등 심장병에 매우 취약했는데도 발병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도 안 됐다. 이별이나 파산 등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이웃이 나서 도와주는 공동체 문화가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추적 조사를 통해 밝혀냈는데 이를 ‘로세토 효과’라고 한다. 공동체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가 진행되던 시기 로세토의 범죄율은 0%에 가까웠고, 대학 진학률도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았는데 공동체의 건강성이 여러 방향으로 확대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코로나19는 재앙이지만, 극복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곳곳에서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최근 확진자가 늘고는 있지만 전체 인구 대비로 보면 우리는 양호한 편이다. 그 배경에 로세토 못지않은 ‘코리아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전담병원 전환#코로나19#박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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