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송년회’ 우리는 달라지고 있다[광화문에서/염희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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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차장
염희진 산업2부 차장
지난 주말 고교 동창들과 처음으로 ‘랜선 송년회’를 가졌다. 각자 준비한 다과와 술을 놓고 비대면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처음 시작할 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언제 대화에 끼어들어야 할지 몰라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공간 제약 없이 친구들과 만날 수 있고 식당을 예약하는 등의 과정이 없어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만남조차 제약을 받는 요즘,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랜선으로 이뤄지는 집들이, 송년회, 각종 모임 등이 소비 지형을 바꿀 정도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22일부터 수도권에서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되며 다수가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부담 없이 친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랜선 모임밖에 없다 보니 관련 시장은 커지고 있다. 파티 초대장을 만드는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얻고 외식이 어려우니 집 안에서 이뤄지는 홈파티 문화가 대중화되고 있다. 홈파티에 어울리는 와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형마트에서는 와인이 맥주의 매출을 넘어섰다. 반면 여느 때와 같으면 연말 특수를 누렸을 식당과 술집, 노래방 등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온라인 모임이 익숙해지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랜선 송년회를 하는 곳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시무식과 종무식을 랜선을 통해 준비하는 회사들도 늘고 있고, 긴 시간의 행사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사회자까지 생겼다.

랜선 송년회를 둘러싸고 상사와 직원들의 온도 차이도 감지된다. 올 한 해 속속 도입된 재택근무로 부서원과 밥 한 번 못 먹어본 상사에겐 랜선 송년회가 온택트 시대에 연말 기분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반면 재택근무가 속속 도입되면서 새로운 근무 방식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새로운 송년회 문화를 금세 받아들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재택근무, 집콕에 익숙해지면서 더욱 개인화된 개인들은 자신만의 공간, 시간, 사람들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모 회사의 부장님이 랜선 송년회를 제안했는데 부원들 여러 명이 노트북이 고장 났다는 비슷한 핑계를 대며 불참했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들린다. 직장인 A 씨는 “기존 송년회에서는 삼삼오오 얘기하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부장 혼자 말할 게 뻔한 랜선 송년회를 누가 하고 싶겠냐”며 “내 공간과 일상을 보여주는 랜선 송년회는 웬만해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올 초 시작된 코로나 이후 일과 소비,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휘몰아친 한 해였다. 그래도 연말 송년회를 랜선으로 하거나 아예 못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년 동안 부대끼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얘기를 나눌 기회는 앞으로 영영 사라지는 걸까. 모든 것이 ‘뉴노멀’이 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랜선 모임만큼은 뉴노멀이 되지 않기를, 사람들끼리는 원하면 언제든 마주 앉아 한 해를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랜선 송년회#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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