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만난 횡재와 악재[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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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해구를 잡았다. 선주의 몸보신용으로 바치려고 높은 곳에 달아서 말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해구가 없어졌다. 야단이 났다. 도저히 누가 범인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보름 정도 지나자 원로 선원 한 명의 머리카락이 일부 하얗게 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의심했다. 그는 결국 해구를 먹었다고 실토했다. 해구를 먹으면 남자들의 정력에 도움이 된다는 낭설이 바다에는 떠돈다. 그런데 잘못 먹으면 머리카락에 이상 반응이 나타난다.

나는 다른 이유로 해구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 중국에 입항하자, 미국에서 실은 원목 위에 해구 한 마리가 발견됐다. 콜럼비아강에서 원목 작업 시 인부들이 죽은 해구를 우리 배에 실었던 것이다. 중국 당국이 위생법 위반으로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바람에 내가 납부해야 했다. 원로 선원에게 해구는 횡재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불운이었다.

황당한 일이 또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선원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선박으로 돌아왔다. 경찰이 따라 선박으로 왔다. 그를 체포해야겠다고 했다. 술집에서 폭행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선원은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곧 출항해야 했다. 갈 길이 바쁜 선장은 보석금을 주고 선원을 풀어서 데리고 왔다. 선원의 선상급을 그만큼 깎았다. 선원은 선장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자신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왜 합의금을 주었냐는 것이었다. 선장은 “당신을 외국에 남겨두고 우리만 출항해야 했느냐”고 했다. 떠나야 할 일정이 있기에 따질 겨를도 없어져 억울해지는 것이 바다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운명이기도 하다.

선박의 연장을 도난당하고 동일한 것을 사야 하는 일을 당하면 참으로 황당하다. 로프가 몇 다발 없어졌다. 법정 부속이라서 이것이 없으면 출항을 할 수가 없다. 동일한 것을 살 수도 없어 안절부절못했다. 출항에 임박하여 현지 대리점이 우리 배의 로프를 보여주더니 상당한 돈을 주면 팔겠다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 것을 돈을 주고 회수한 다음 출항에 나섰다. 그 항구를 떠나면서 허공에 대고 저주를 퍼부었다.

바다에는 이렇게 불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목선에서 횡재를 한 적도 있다. 같은 화주의 원목을 반복해 실어주었다. 화주 감독이 나를 부르더니 그동안 고생했으니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그가 지름 2m에 두께가 1m 정도 되는 원목 뿌리를 건넸다. 그는 옹이나무(그루터기)라고 하면서 한국에 가져가면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고참 선원이 나에게 말했다. “1항사님, 고기 굽는 집에 가면 식탁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에 200만 원은 족히 받습니다”라고 했다. 5개이니 합이 1000만 원이다. 10명의 갑판부 선원과 나누면 각 100만 원가량의 용돈이 생긴다. 대만에 들어갔다. 개당 200만 원에 팔아서 선원들과 나누어 가졌다. 1등 항해사인 나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개선장군처럼 환영을 받으면서 나는 하선하여 즐거운 휴가를 가졌다. 이런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있으니 바다 생활은 견딜 만했다. 그래서 휴가를 갈 때에는 “이제 바다생활은 마지막”이라고 각오를 다지지만 휴가를 마치면 다시 바다가 그리워진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해구#바다#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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