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거짓말[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3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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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였다. 아이는 길에서 주운 돌멩이를 마치 값비싼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안 그래도 좁은 집 곳곳에는 그런 식으로 아이가 길에서 주워 온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일쑤였다.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 거짓말을 했다. 보아하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돌멩이 같은데, 네가 아기 돌멩이를 함부로 집에 데려오면 엄마 아빠 돌멩이가 아기 돌멩이를 애타게 찾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엄마 아빠 돌멩이가 얼마나 속상하겠냐면서 구슬프게 우는 연기까지 보탰다. 내 연기가 용케 통했는지 아이는 그동안의 돌멩이 유괴를 깊이 뉘우치며 아기 돌멩이를 집 앞 화단에 놓아뒀다.

이튿날 아침 아이는 화단에 아기 돌멩이가 사라졌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엄마 아빠 돌멩이가 아기 돌멩이를 데려간 게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 소식을 어린이집 친구들과 선생님한테도 전했을까. 이튿날 아침이 오기 전에 아기 돌멩이를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만일 집이 넓었다면, 아이가 길에서 주워 온 돌멩이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집이 넓었다면, 나는 애초에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 아이의 목욕은 내가 전담했다. 욕실이 좁다 보니 아이는 목욕할 때마다 내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면서 자기 몸과 내 몸을 비교하곤 했다. 그러다 한번은 아이가 갈라진 내 발뒤꿈치를 가리키며 어쩌다 다친 거냐고 물었다. 다친 게 아니라 각질을 방치해서 그런 거였지만, 나는 또 이때를 놓칠세라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동네 놀이터에서 갓난아이였던 너를 품에 안은 채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너를 물어 가려고 하는 바람에 호랑이와 싸우다 다친 영광의 상처라고 했다.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감동한 눈치였고, 이튿날 어린이집 친구들과 선생님한테도 용감한 아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만일 욕실이 넓었다면, 아이가 내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기 어려울 만큼 욕실이 넓었다면, 나는 애초에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요 며칠 일각에서는 소위 ‘13평’ 크기의 집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당한지 아닌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가난한 부모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아동학대’라는 주장까지 있다. 마침 우리 세 식구가 살던 집도 13평 크기의 다세대 빌라였고, 그마저 가까스로 구했다. 돌이켜보면 늘 좁고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늘 불행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집의 크기에 맞춰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던 게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아이가 생겼고, 다행히 지금은 그때보다 더 넓은 집을 빌려 살고 있다. 아이도 어느새 훌쩍 자라서 더 이상 내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게 가장 아쉽다. 아직 못다 한 거짓말이 무궁무진한데 말이다.

 
권용득 만화가


#거짓말#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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