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민주주의는 없다[동아 시론/박성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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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은 민주주의 회복력 보여줘
결단해야 할 일 여론조사에 미루고
책임져야 할 때 투표 뒤에 숨는 정권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잘하고 있나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
워싱턴포스트는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각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돌아왔다. 우리를 믿어 달라’고 말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전화를 받기도 전에 세계는 “미국이 돌아왔다”는 격한 환영의 메시지를 미국과 바이든에게 보내고 있다. 우리가 알던 미국이 돌아왔다. 민주주의가 돌아왔다. 대통령의 언어가 돌아왔다.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바이든은 통합과 치유를 강조했다. “우리는 상대를 적으로 취급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같은 미국인입니다. …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거둘 때가 옵니다. 갈등 후에는 반드시 치유의 시기가 옵니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입니다.”

지난 4년 도널드 트럼프 시대는 끔찍했다. 트럼프에게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허영심과 자아도취에 빠져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 타락이 발생한다”는 막스 베버의 비판은 너무 관대하다. 그는 미국을 극단적으로 분열시켰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치명적으로 훼손했다. 미국은 존경과 신뢰를 잃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대통령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속된 말로 “어쩔”로 나오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트럼프는 궤변, 거짓말, 음모론을 쏟아내는 위험한 반자유주의, 반지성주의자다.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다. 지도자도 없고, 위대함도 없다. 트럼프는 그런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세계는 ‘트럼프 바이러스’와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트럼피즘 팬데믹’의 시기였다.

세계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프리즘을 통해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점검해보고 두 가지 사실에 놀랄 것이다. 자신들의 민주주의가 미국보다 더 망가졌다는 것과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회복 탄력’이 없다는 현실에 절망할 것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얘기다. 극단적 진영 싸움으로 국민은 분열됐다. 민주화 운동가들이 모였다는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민주주의는 죽어가고 있다. 법치는 약해지고 인치는 강해졌다.

‘훌리건’이 된 폭력적 팬덤은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는 이들의 폭력적 행위를 ‘양념’과 ‘에너지원’이라고 부추겼다. 어느 축구 선수도 훌리건을 옹호하지 않는다. 모든 선수가 “경기 도중 우리 팬이라도 인종 차별 행위를 하면 나는 그 즉시 경기장을 떠날 것이다”라고 하지 “열정적인 그들 때문에 힘을 얻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베버는 “정치인은 자신이 누릴 권력에 도취되기에 앞서 감당해야 할 권력을 ‘책임’ 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선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는 ‘증명’하는 자리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트럼프와 문재인 정권의 치명적 결함은 베버가 통렬히 비판한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다.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없는 정치인은 지도자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도자가 결단해야 할 ‘탈원전’ ‘지소미아 종결’ 같은 이슈에서는 여론조사를 들이밀고, 민심을 따라야 할 인사 문제에서는 높은 반대 여론을 무시한다. 결단해야 할 일은 여론조사에 미루고, 책임져야 할 일은 당원 투표 뒤에 숨는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 세력이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권력 운영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은 표로 심판받는다. 미국 국민은 책임을 물었고 트럼프의 분열 정치는 심판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패배는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증거”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다. 모든 게 전 정권 탓, 보수 언론 탓, 검찰 탓, 야당 탓이다. 책임 결여는 민주의 결여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지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이다. 집권 세력이 책임을 지지 않고, 야당이 책임을 물을 자격을 잃고, 국민이 표로 책임을 묻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망가진다.

오래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국립헌법센터에서 들은 인상적인 말이 생각난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



#민주주의#바이든#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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