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과 이천의 ‘다른 길’[현장에서/김정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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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국제소프트테니스장에서 정구를 즐기고 있는 문경 시민들. 주인식 문경시청 감독 제공
문경국제소프트테니스장에서 정구를 즐기고 있는 문경 시민들. 주인식 문경시청 감독 제공
김정훈 스포츠부 기자
김정훈 스포츠부 기자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4일 오후 9시경. 경북 문경국제소프트테니스장은 어둠 속에서 홀로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코트에서는 어린 학생부터 노년의 부부까지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문경시민들이 연신 “파이팅”을 외치며 소프트테니스(정구)를 즐기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쌀쌀한 날씨였지만 땀방울로 얼룩진 시민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1960, 70년대 국내에서 인기가 많았던 정구지만 지금은 웬만해선 주위에서 보기 힘든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문경에서만큼은 예외다. 문경시민들이 가장 즐기는 생활체육 1등 종목이다. 시민들로 구성된 동호회만 7개이고 회원 수도 500명이 훌쩍 넘는다. 가입하는 시민들도 계속 늘고 있다.

문경에서 정구가 유독 인기를 끄는 것은 문경시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문경시는 국제소프트테니스장을 1년 365일 내내 오전 5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누구든 정구를 즐길 수 있다. 문경시는 각종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도 오후 6시부터는 시민을 위해 개방한다.

문경시가 올해 4월 예산 19억 원을 투자해 4개 면이던 실외 돔구장을 8개 면으로 확장했다. 지붕이 설치되면서 눈비가 오는 날에도 운동할 수 있는 전천후 환경이 마련돼 코트를 향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더욱 늘어났다. 비인기 종목 정구에 대한 시의 과감한 투자가 생활체육 활성화로 이어진 것이다. 문경시는 시민들에게 건강하게 운동을 즐길 기회를 만들어 줬을 뿐 아니라 연중 각종 정구대회 유치를 통해 폐광 이후 쇠락해 가던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번 주 열리고 있는 제98회 동아일보기 대회 기간에만 1000명 넘는 외지인이 문경을 찾았다.

경기 이천시는 문경시와 상반된 길을 택했다. 생활체육 활성화와 체육인구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종목을 선정해 새롭게 창단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35년간 유지했던 이천시청 정구팀에 일방적인 해체 통보를 하고 다른 종목 팀 창단 계획을 밝혔다. 이천시청 정구팀은 전통의 강호다. 지난해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남자 일반부 단체전 1위와 복식 1위를 휩쓸었다. 히로시마 아시안컵 국제대회 준우승으로 한국 정구의 위상도 높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7명 중 3명이 부상을 입은 악조건에서도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생활체육 활성화는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추구하는 목표다. 국가적으로 장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활체육 활성화를 꼭 인기 종목을 통해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테니스보다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운동 효과가 높은 정구는 남녀노소가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아시아경기에서 늘 메달을 안겨주는 효자 종목이다. 단순히 생소한 종목이라고 없앤다면 비인기 종목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문경시의 사례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정훈 스포츠부 기자 hun@donga.com



#문경#이천#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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