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새는 국경이 없는데… 대만 조류학회 개명시킨 중국[광화문에서/김기용]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입력 2020-10-19 03:00수정 2020-10-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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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우리나라 서해안이 주 서식지인 저어새는 세계적으로 2500∼3000마리만 남아 있는 멸종위기종이다. 전 세계 조류보호단체가 힘을 합쳐 저어새 보호 및 관리에 나서고 있다. 저어새는 추운 겨울에는 대만까지 약 4000km를 날아 월동한다. 이렇게 겨울에 대만으로 날아온 저어새를 관찰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단체가 ‘중화민국 야생조류학회(CWBF·Chinese Wild Bird Federation)’였다.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최근 이 학회가 이름을 ‘대만 야생조류학회(TWBF·Taiwan Wild Bird Federation)’로 바꿨기 때문이다. 학회 스스로 총회를 거쳐 이름을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상 강제 개명이다. 개명 배경에는 지구상에서 ‘중화민국’(대만의 공식 국호)을 지우려는 중국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1988년 창립됐다. 이후 대만 내 18개 지역 조류단체와 3개 환경보호단체를 대표하는 대만 최대 조류보호단체로 성장했다. 규모만큼이나 국제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1996년부터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기반을 둔 국제 조류 서식지·생태계 보호단체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과 파트너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두 조직은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 국제본부 역할을, TWBF가 대만지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일을 나눠 24년간 함께 활동해 왔다.

문제는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 대만지부에 이름 변경을 요구하면서부터 불거졌다. 이름에 중국의 한 지방을 가리키는 ‘대만’을 넣으라는 것이다. 또 본부와 지부 사이에 오가는 모든 영문 서류에서 ‘중화민국’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이 모두가 겉으로는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새를 보호하는 일에 ‘대만’이니 ‘중국’이니 하는 문제가 중요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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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협력과 지원이 필요한 이 단체는 결국 이름을 CWBF에서 TWBF로 바꿨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영문명만 바꾸고 중문명에서는 ‘중화민국’을 그대로 남겨뒀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이지 정치 행위자가 아니다”라면서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은 중국 정부의 압력을 받고 갑자기 우리가 정치 행위를 할 위험이 있다면서 오히려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선언’에 서명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은 지난달 말 24년 동안 함께 일한 이 단체를 결국 제명했다. 이제 월동을 위해 대만에 날아온 멸종 위기 저어새를 보호하는 일은 국제단체의 지원 없이 대만 단체 혼자만의 몫이 됐다.

중국의 심기를 조금만 건드려도 이렇게 화를 입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 됐다. 최근 세계적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중국 누리꾼들의 억지 공격도 이 연장선이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까지 국경을 가르는 중국이다. BTS처럼 세계의 지지와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돈과 인구(시장)를 앞세운 중국의 ‘인해전술’에 순식간에 당하게 된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서해안#저어새#조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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