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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北 도발에 “말로만 대응 말라”던 靑은 어디갔나[문병기 기자의 청와대 풍향계]

입력 2020-09-29 03:00업데이트 2020-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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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청와대에서 북한군의 우리 국민 총살 사건과 관련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청와대에 보내온 통지문을 공개하는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병기 기자
2017년 7월 4일 오전 9시 40분. 북한은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비행장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쏴 올렸다. 5시간 뒤 북한은 특별중대발표를 통해 “핵 무력 완성의 최종 관문인 대륙간탄도로켓(ICBM) 발사에 단번에 성공했다”고 했다. ICBM급 화성-14형 첫 발사 성공을 선언한 것.

같은 날 밤 문재인 대통령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군에 무력시위를 지시했다. 다음 날 오전 7시 우리 군은 탄도미사일 현무-2A, 주한미군은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에이테킴스)로 북한 도발 지휘부를 공격하는 ‘원점타격’ 훈련을 했다.

문 대통령 지시의 전후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국가안보실이 원점타격 훈련을 제안하면서 ‘너무 과감한 제안이 아닐까’ 몇 번을 망설였다고 한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반응은 예상외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안 그래도 매일 말만 하지 말고 대응 방안을 찾아보라고 할 참이었다. 이거 무조건 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힘을 얻은 청와대가 ‘현무 미사일 5발을 쏘겠다’고 제안하자 미국이 오히려 ‘한 발씩만 쏘자’고 말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원점타격’ 훈련을 지시한 때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한 독일 출국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하루 뒤인 6일 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을 위해 연단에 섰다. 평화협정 체결 등 문재인 정부 첫 대북정책의 틀이 담긴 이른바 ‘쾨르버 연설’이다.

3년 2개월여 전 일화가 떠오른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청와대의 너무 달라진 대응 때문이다. 북한군이 표류하던 한국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군의 첩보가 청와대에 접수된 것은 22일 오후 10시 반경.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제안을 담은 유엔 총회 연설을 하기 약 3시간 전이었다.

그러나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은 23일 오전 1시 긴급 회의를 갖고도 문 대통령에게 첩보를 첫 대면 보고할 때까지 북한군의 우리 국민 사살이라는 도발적 행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확인’을 이유로 북한의 만행에 대한 발표조차 속절없이 미루면서 정부 내에선 “청와대가 공개를 늦추는 사이 북한이 우리 국민 사살 사실을 먼저 공개하면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결국 군이 이 씨 사살 37시간 만인 24일 오전 11시 공식 발표를 하기 전 북한의 만행이 국회와 군에서 흘러나왔다.

청와대는 늑장대응을 두고 첩보의 신뢰성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7월에도 정부는 북한의 ICBM 개발 성공 선언에 대해 “아직 ICBM으로 결론 내리기 어렵다”며 반신반의하면서도 무력시위에 나섰다.

전쟁 위기로 치닫던 2017년 7월과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치른 이후인 2020년 9월의 한반도 정세는 다르다는 점도 집중 부각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통령께서 얼마나 이 시련을 넘기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계실지, 누구보다 잘 알 것만 같습니다”라는 따뜻한 친서를 보낼 만큼 두터운 ‘정상 간의 신뢰’가 쌓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간의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대단히 미안하다”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밝힌 상대를 총으로 쏜 행위를 ‘정당한 사살’이라고 강변하는 ‘반쪽 사과’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청와대 안팎에선 대통령의 올해 유엔 총회 연설을 국제사회를 통해 남북관계를 움직일 ‘마지막 기회’로 봤다. 이런 고민을 알고 있는 참모들로선 종전선언 연설을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두 눈 질끈 감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을 사살한 북한에 단호한 대응은커녕 북한의 사과에 반색하는 태도는 ‘정상 간의 신뢰’로 포장하기엔 한참 선을 넘었다. 쾨르버 연설로부터 3년 2개월, 달라진 건 북한이 아니라 청와대일지 모른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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