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는 어려워, 버리기는 더 어려워[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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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나는 한국 생활 첫 3년간 4곳의 다른 집에서 살았고 호주로 돌아간 것을 포함해 5번 이사를 해봤다. 호주에서 다시 한국으로 이민 온 뒤 16년간 다시 4번의 이사를 했다.

지난주가 바로 그 4번째 이사이면서 11년 만의 이사였다. 친구들 중에는 2년마다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다. 11년 만의 이사라 친구들보다는 경험이 부족했던 것일까, 정말 고생스러웠다.

사실 2009년 이삿날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포장이사를 신청했고 전부 다 전문가들에게 맡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사하기 전 아침에 집에서 출근했고 저녁에 새 집으로 퇴근했다. 점심에 새 집에 들러 도와줄 것이 있을지 살펴봤지만 결국 소파에 누워 잠깐 낮잠까지 자고 말았다. 아내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못마땅했는지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당시는 작은 아파트에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해서 나쁜 기억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이사는 완전히 달랐다. 서울 사대문 안으로 집을 옮기는 대신 아내는 ‘미니멀리즘’을 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더 작은 집으로 옮기려면 모든 것을 줄여야 한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물건 줄이기가 필수다. 물건을 정리해 줄이는 데 실패하면 큰일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국 큰일이 나고야 말았다.

아내도 나도 ‘물건 정리의 원칙’은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수개월간 계속 미루고 미룬 것이 화근이었다. 게을러서라기보다는 항상 다른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핑곗거리가 있었다. 집안 살림을 줄이는 일 자체를 시작하기도 전에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옷부터 시작해 익숙한 물건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이사하기 나흘 전 휴가를 냈고 그제야 정리를 시작했다. 한집에서 11년간 부부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쌓아놓을 수 있는지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이사 갈 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물건을 간직하고 어떤 것들을 처분할 것인가. 남편의 소장품은 아내의 폐기물이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아무 물건이나 쌓아두는 편은 아니지만 계속 이런 상태면 곧 황학동 풍물시장 수준이 될 지경이다. 넥타이 얘기다. 고등학교 교복 넥타이를 비롯해 200개의 넥타이를 모아왔다. 더 이상 사용하지도 않지만 추억 때문에 버리지는 못했다. 이번에 3분의 1 정도로 줄였다. 내가 좋아하는 원색 바지들, 책, 장식품도 새 집에 놓을 자리가 없어서 두고 가야 한다.

한국의 포장이사 시스템은 정말 놀랍다. 네덜란드에 사는 사촌들이 우리가 하루 만에 이사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못 믿겠다며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졸랐다. 사다리차가 와서 11층으로 사다리가 올라가는 모습도 촬영했다. 사다리가 11층까지 올라가는 모습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외국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신기해한다. 사촌들에게 SNS로 동영상을 보냈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나 빨리 이삿짐을 포장해서 빨리 출발하다니! 네덜란드는 천천히 옮기며 1, 2주에 걸쳐 이사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하지만 빠른 이사에는 대가가 따른다. 옮기는 가운데 깨지거나, 잃어버리거나, 제대로 다시 조립이 안 되는 일이 뒤따른다. 심지어 며칠 뒤에 비로소 발견하는 일도 있다. 남의 손에 맡기면 내가 직접 하는 것만 못한 것이 당연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나, 고양이 셋이 이사를 마무리했다. 옛집에서 이삿짐을 싸면서 생긴 스트레스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우리는 이삿날 한 사람만 살아남는 것 아니냐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살아남았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이사#버리기#한국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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