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재해 지원조직? 日자위대 창설 70년, 흔들리는 정체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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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걸프전-9·11 후 해외활동 본격화… 日 트럼프 압박 재무장 기회로 삼아
항공자위대, 금기 ‘작전’ 부대 이름
재해지원 적극 나서 인식도 개선

도쿄 육상자위대 홍보센터에 전시된 코브라 헬기와 같은 전투 장비를 갖춘 ‘군’의 얼굴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도쿄 육상자위대 홍보센터에 전시된 코브라 헬기와 같은 전투 장비를 갖춘 ‘군’의 얼굴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6일 일본 도쿄 네리마구(東京 ) 육상자위대 홍보센터. 1층 전시실 한가운데에 일명 ‘코브라’로 불리는 대전차 공격용 헬기 AH-1S가 있었다. 코브라 조종석을 본 초등학생 관람객이 “운전대가 없다”고 했다. 안내하던 자위대원은 웃으며 “게임할 때 사용하는 조이스틱처럼 생긴 조종간이 바로 운전대다. 이 헬기는 수송용이 아니라 공격용이어서 몸통이 날렵하고 좌석이 2개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전차, 장갑전투차, 기관포, 원격 조종 무인기, 중거리 다목적 유도탄 등이 일렬로 전시돼 있었다. 모두 육상자위대가 사용하는 실물 전투장비였다. 누가 봐도 군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홍보센터 어디에도 ‘군대’라는 단어는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인들은 과거 전쟁을 떠올리게 만드는 군대라는 용어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국내외에서 자위대의 활동 반경이 갈수록 넓어지고 주변국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데도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특성상 자위대가 국내 재해 복구 사업에 대폭 투입되면서 군대에 대한 일반 일본인들의 거부감도 대폭 누그러졌다. 일본 압제를 겪은 한국인 입장에서 결코 편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실상 군대지만 군대라 불릴 수 없는 자위대. 일본의 패전일인 이달 15일을 앞두고 자위대 70년 역사를 되짚어봤다.

○ 위기 때마다 활동반경 넓혀
1945년 8월 15일 2차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 연합군총사령부(GHQ)의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을 태평양의 스위스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무장과 군수산업을 완전히 해체해 스위스 같은 영세중립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이 계획이 틀어졌다. 미국은 일본 내 미 육군 4개 사단을 모두 빼내 한국에 투입했다. 두 달 후 맥아더 사령관은 미군이 빠진 일본의 치안 공백을 우려해 7만5000명 규모의 경찰예비대 창설을 지시했다. 바로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다.

1950년 8월 출범 당시 경찰예비대는 경찰을 지원하는 조직이었다. 그럼에도 M1 소총과 헬멧 같은 실전 무기와 용품을 지급받았고 전차를 몰았다. 임무는 경찰 지원이지만 외형은 누가 봐도 군대였다. 패전 후 만들어진 일본의 평화헌법이 교전권 및 군대 보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군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을 뿐이다. 이처럼 자위대는 태생부터 일종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경찰예비대는 그 후 보안대, 경비대 등으로 이름을 바꿔 달다가 1954년 공식적으로 자위대라는 이름을 달았다. 홍보센터 내 자위대 활동 연표는 1950년부터 90년까지 거의 비어 있었다.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활동 내역이 빽빽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걸프전이 끝난 직후인 1991년 4월 일본은 기뢰 제거를 위해 해상자위대 소해(掃海)부대를 중동 페르시아만에 파견했다. 자위대의 첫 해외 원정이었다. 당시 야권은 “헌법정신을 짓밟는 폭거”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정권은 “평화 시기에 기뢰를 제거하는 것은 무력행사가 아니고 해외 파병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해외 파견을 강행했다.

일본은 1992년 6월 국제평화협력법을 통해 자위대의 해외 진출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한마디로 평화 유지를 위해서라면 해외 활동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에 캄보디아 모잠비크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 자위대를 적극 파견했다.

2001년 9월 9·11테러 여파로 자위대의 활동 반경이 더 넓어진다. 일본은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테러 대응책을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테러 대책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특별법은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 협력이란 명분을 내세워 자위대가 해외 주둔 미군의 후방 지원을 할 수 있게 했다. 평화 유지가 아닌 군사 활동 지원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활동 반경도 기존 해외 공해와 그 상공에서 타국 영토로 넓어졌고 무기사용 제약도 대폭 완화됐다.

70년 전 7만5000명으로 시작된 육해공 자위대의 수는 현재 22만3000여 명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미국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 ‘F-35A’ 18대, 호위함 48척, 잠수함 19척 등 첨단 장비도 갖췄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한 2012년 12월 이후 매년 방위비를 늘리고, 공격용으로 분류되는 무기 구매도 진행하면서 갈수록 첨단화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위성정보를 늘리고 우주 공간까지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 재해복구 적극 나서며 거부감 누그러뜨려
정작 일본 내에서는 아직까지 자위대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아직도 ‘작전’이라는 군대 용어 대신 일반 회사에서 쓰는 ‘운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다. 패전 후 일본인들이 군대를 일종의 ‘악(惡)’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일본 자위대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7일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피난민을 구조했던 것처럼 ‘재해 지원’의 얼굴을 갖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 자위대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7일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피난민을 구조했던 것처럼 ‘재해 지원’의 얼굴을 갖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자위대의 재해 지원 활동이다. 지난달 4일 규슈 남부 구마모토현에서 폭우가 쏟아지면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도 주요 언론은 연일 자위대원들의 구조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노약자를 태운 고무보트를 밀었고, 도로에 산처럼 쌓인 흙과 모래를 치웠다.

내각부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79.2%의 응답자들이 자위대 활동 목적으로 ‘재해 대처’를 꼽았다. ‘국가 안전 확보’(60.9%), ‘국내 치안 유지’(49.8%)보다 훨씬 높았다. 자위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대규모 구호활동을 벌이면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 현장에도 일부 자위대가 투입됐다.

올해 방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자위대원은 총 447차례 국내 재해현장에 파견됐다. 당시 동원된 자위대원 수만 약 106만 명이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이 전투복에 헬멧을 쓴 자위대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일부는 상당한 호감을 지니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위대의 행보도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다. 자위대는 2012년 6월 재해 대비 훈련을 명목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도쿄 도심 행진을 감행했다. 항공자위대는 올해 5월 우주 전문 부대인 ‘우주작전대’를 창설했다.

○ 아베, 트럼프 재정 압박을 재무장 기회로 삼아
미국과 일본은 1960년 1월 안전보장조약을 통해 일본의 안보를 미국이 책임지는 대신, 미국은 일본 안에 미군 기지를 설치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은 이 일방적 의무에 불만을 표했다. 한마디로 일본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많은 희생을 하는데도 부자 나라인 일본의 재정 기여가 낮다는 의미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출범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일본이 공격받으면 우리는 생명을 걸고 일본을 보호한다. 하지만 미국이 공격을 받으면 일본은 소니 TV로 공격을 지켜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더 많은 돈을 내든지, 아니면 직접 안보를 책임지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아베 총리는 직접 안보를 책임지는 쪽을 택했다. 그는 재집권 후 줄곧 “일본이 국제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며 노골적인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2014년 ‘무기 수출 3원칙’을 47년 만에 전격 폐지해 일본의 무기 수출을 허용했다. 한 해 뒤에는 미군 등 아군이 공격당했을 때 일본이 공격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했다. 많은 시민들이 “헌법에 있는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어 차원에서 반격)을 위배했다”며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최근에는 적 기지를 선제공격할 수 있는 ‘적 기지 공격 능력’ 체제까지 갖추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교도통신의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전수방위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에 군(軍) 지위를 명기해야 한다”는 답은 17%에 불과했다. 하지만 “돈을 더 내든지, 안보를 직접 책임지라”는 트럼프 행정부와 집권 후 줄곧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아베 정권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어 언제 자위대의 역할이 군대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자위대가 ‘군대’와 ‘재해 지원조직’ 사이에 애매하게 존재할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아 점점 두려워진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자위대#인식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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