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하소연[이준식의 한시 한 수]〈7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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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받아 찬란한 깃털 나부끼고/밤이면 거문고 가락에 맞춰 울음 운다.

황궁 상림원엔 나무들 하고많건만/내 머물 가지 하나 내주질 않네.

(日裏양朝彩, 琴中伴夜啼. 上林許多樹, 不借一枝棲.)

―‘까마귀를 노래하다(영오·詠烏)’(이의부·李義府·614∼666)

시문은 당대 과거시험의 필수과목, 관리로 등용되려면 예외 없이 이 관문을 거쳐야 했다. 시재 하나로 벼락출세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시문을 애호한 황제나 고관대작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펼침으로써 깜짝 발탁되거나 이름을 알려 탄탄대로의 관운을 누린 사례도 흔했다. 이백이 그랬고 백거이, 왕유가 그랬다. 이의부의 출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이었지만 시재 하나만은 특출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에 태종이 그를 불러 즉흥시를 한 수 짓게 했다. 시제는 ‘까마귀’. 마침 황제가 정원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 까마귀 떼가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고운 깃털, 밤마다 명곡 ‘오야곡(烏夜曲)’ 가락에 화합하는 듯한 울음소리, 그런 까마귀건만 궁궐에서는 깃들 둥지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늘 찬밥 신세였다. 재능을 갖췄으되 9품 말직에만 머물렀던 자기 처지를 비관한 비유였다. 황제가 즉각 응수했다. “어찌 가지 하나뿐이랴. 모든 나무를 그대에게 내주겠노라.” 그는 곧바로 8품 감찰어사로 승진했고 태자를 보필하는 직위에 오르기도 했다. 태평성대의 여유, 문학적 낭만이 예우를 받는 분위기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후일 이의부는 뭇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측천(武則天)의 황후 등극을 최초로 상소하기도 하여 측천과 고종의 비호 속에 재상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인품을 ‘겉과 속이 다른 농간의 명수’라 기록한다. 음흉한 인물을 뜻하는 성어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까마귀#하소연#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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