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고심할 ‘미래로 가는 길’[광화문에서/임우선]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입력 2020-07-20 03:00수정 2020-07-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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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미래로 가는 길(The road ahead)’이란 책이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쓴 이 책은 당시 기준으론 허무맹랑했다. 스마트폰, 인터넷 쇼핑을 비롯해 재택근무, 인터넷 영화관 등…. 공상과학(SF) 영화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던 그의 예상들은 실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이런 ‘박수무당급’ 예언을 쏟아낸 게이츠조차 빗맞힌 분야가 딱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교육’이었다. 그는 ‘미래의 학교’라는 챕터에서 21세기의 수업은 주로 멀티미디어로 진행되고, 교사는 세계적 강의를 학생들과 공유할 것이며, 숙제는 전자문서로 이뤄지리라 예견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이 다 바뀔 동안 교육은 변하지 않았다. 교육은 제아무리 놀라운 기술과 하드웨어가 나와도 시스템과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힘든 분야여서다.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교실과 교사 위주 교육이 올해 돌연 원격수업으로 변한 건 순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게이츠의 말대로 인간의 선택에 의한 준비된 변화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등 떠밀려 가는 게 예상치 못한 점이긴 하다.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만큼 AC(After Corona) 시대에 맞춰 시스템과 사람들을 얼마나 바꾸느냐에 개인, 학교, 국가 단위 교육 성패가 달리게 됐다.


그런데 ‘미래의 학교’ 설계 키를 쥔 정부의 움직임은 걱정스럽다. 시스템과 사람에 대한 고민은 뒷전인 채 눈에 보이는 그럴싸한 일들만 하려 하는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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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이다. 지난주 교육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것”이라면서 18조5000억 원을 투입해 학교 시설을 변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정보기술(IT) 설비 투자를 늘리겠다는 부분은 그렇다 쳐도 ‘신재생에너지 설비와 열교환형 환기장치를 갖춘 미래 학교’를 구축하겠다는 부분은 누가 봐도 대통령의 ‘그린’ 기조에 발맞추기 위한 끼워넣기로 읽혔다.

앞으로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환기장치나 슬라이딩 도어일까. 본보가 최근 교사 1933명에게 코로나19 이후의 학교 현장에 대한 제언을 구하자 이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원한 것은 새 시대에 맞는 교육 행정과 수업 콘텐츠, 평가 방식 개선 등 ‘소프트웨어’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공교육을 제공하려면 진짜 고민해야 할 건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교육 자치와 학교 자율’을 내세워 학교와 교사들에게 숙제를 떠넘기기 일쑤다. 현실 적응만도 벅찬 현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지금 교육계는 싫어도 뛰어들어야 하는, 기회와 죽음이 공존하는 바다 앞에 서 있다. 앞으로 대학들은 TED에 무료로 올라오는 세계적 명사의 강의, 아이튠스에 올라오는 아이비리그의 세계적 석학 강의와 경쟁해야 한다. 이를 활용해 궁극의 교육적 혜택을 주는 교수와 대학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이는 입시에 대한 사회적 가치마저 바꿔놓을 수 있다. 교육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고민하고 공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교육의 미래로 가는 길엔 출석체크와 시험이라는 껍데기만 남을지 모른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교육부#미래로 가는 길#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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