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여당 초선들의 슬기로운 의원 생활[광화문에서/길진균]

길진균 정치부 차장 입력 2020-07-03 03:00수정 2020-07-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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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다들 그냥 착하고 성실한 공무원 같아.”

더불어민주당 중진 A 의원의 당 초선 의원들에 대한 평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 176명 가운데 초선은 82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대대적인 물갈이 요구에 부응해 원내로 진입한 초선들을 바라보는 당 안팎의 기대가 컸다. 참신하고 개혁적인 마인드로 구습에 젖은 정치를 바꿔 줄 것 같았다.


개원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그들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개혁적 정치모임이 꾸려졌다는 소식도 없다. 들리는 얘기는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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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민주연구원 주최 포럼 강연자로 나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초선들에게 “(여러분들이) 야당 역할을 하면 안 된다. 장관 밀어내기, 두드리기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 행정부를 건드리지 말라는 훈계였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지휘랍시고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며 약 100분 동안 무용담 섞인 조언을 이어갔다. 초선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국회의원 계속 하셨으면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이 되셨을 것” “다음엔 총리를 하시라” “대통령을 하시라” 등의 덕담이 이어졌다. 전날 같은 자리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초선 때는 자기를 죽이면서 전체를 위해 함께 가는 방법, 이런 것에 할애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직 장관의 노골적인 입법부 ‘군기 잡기’에 대해 초선들은 그때도 이후에도 일언반구가 없다.

여당 정치인은 정부가 잘못해도 일단 옹호해야 할 때가 있다. 양심과 원칙이 떠올라도, 쉽고 편한 길은 그냥 입 꾹 다물고 사는 것이다. 괜히 나섰다간 찍히기 십상이다.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그 본보기일 게다.

중진 의원 B는 “17대 열린우리당 때는 열정이 넘치는 초선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21대는 반대로 다들 무난한 정치를 하는 듯해 걱정”이라고 했다. 금 전 의원 징계, 윤미향 의원 관련 의혹,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대책 헛발질 등에 대해 초선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심지어 21대 국회 들어 정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8번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초선 발언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금 전 의원은 최근 “토론과 비판정신을 강점으로 하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이 주는 따뜻한 자리와 보호를 누리기 위해선 그저 말없이 웃어주고 따라주는 것이 ‘슬기로운 의원 생활’이라는 것을 민주당 초선들은 이미 깨친 듯하다.

돌이켜보면 잇따른 선거 승리와 콘크리트 지지율이 보수정당에는 병세를 느끼지 못하게 막은 마취제였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천막 당사’와 함께 당의 전면에 나선 이후 보수정당은 총선·대선에서 12년 동안 승자의 자리를 누렸다. 당은 부지불식간에 고인 물이 됐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의원 153명 중 절반에 달한 초선 76명은 ‘존재감 제로’라는 평을 받았다. 2016년 20대 총선 이후 펼쳐진 상황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잇따라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과 이어지는 초선들의 침묵. 민주당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슈퍼 여당#초선#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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