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부모 방치하는 더 나쁜 정부[광화문에서/우경임]

우경임 논설위원 입력 2020-06-23 03:00수정 2020-06-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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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23kg 아홉 살 아이가 컴컴한 여행가방 안에 갇히던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뜨거운 지붕 위를 맨발로 걸어 집을 나온 아이는 얼마나 겁이 났을까. 한 아이는 죽고 한 아이는 살았다. 심장이 벌렁거려 읽기조차 힘든 뉴스들이었다.

읽기도 힘든 뉴스를 쓰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엉엉’ 우는 소리나 띄엄띄엄한 언어로밖에 고통을 호소할 수 없는 아이들이 또 잊혀질까 봐. 아무런 힘이 없어 언로가 막힌 아이들의 인권은 쉽게 무시된다. 우리는 평소 ‘살려 달라’는 아이들의 비명을 외면하다가 죽음으로 증명하고 나서야 분노한다.

2013년 여덟 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경북 칠곡군 사건 이후 아동학대특례법이 제정됐다. 가해 부모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2016년에는 추운 겨울 화장실에서 찬물 학대를 받다가 일곱 살 신원영 군이 숨졌고, 2017년에는 다섯 살 고준희 양이 친부에게 살해당해 암매장됐다. 그로부터 1년 뒤 위기 아동을 찾아내기 위해 공적 정보를 통합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도입됐다. 그런데도 비극이 재발했다. 정부는 부산을 떨며 민법상 친권자의 징계권 삭제, 어린이집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 전수조사 등 뒷북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두 건의 아동학대 사건 모두 사전에 경고음이 울렸다. 충남 천안 여행가방 학대 사건의 경우 한 달 전 병원의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경남 창녕 맨발 소녀 역시 학대의심 아동으로 등록돼 있었으나 행정력은 딱 전산망까지만 닿았다. 아이를 구한 건 목숨 건 탈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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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동학대가 발견됐는데도 왜 아동을 보호할 수 없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학대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치자. 시퍼렇게 멍든 아이가 부모의 위협에 “넘어져서 다쳤다”고 한다. 경찰이 증거 수집 없이 “내 자식 내가 가르친다”는 부모로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면, 그 경찰은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나서 피해 아이를 가해 부모와 분리시켰다고 한다면, 아마 그 아이는 피해가 더 심각한 아이에게 밀려 갈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전국에 72곳뿐인 학대피해 아동쉼터는 늘 포화 상태다. 올해 아동학대 방지 예산은 285억 원으로 사실상 표(票)를 가진 부모의 수당인 아동수당 예산(2조2883억 원)의 1.2% 수준이다. 학대받은 아동을 구출할 수단과 시설이 마땅치 않다면 당연히 예방적인 개입이 어려워진다.

아동학대가 드러나면 부모는 악마가 되고 엄벌하라는 공분이 인다. 관련 부처 장관들이 모여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약속한다. 부모의 잔혹한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예산과 인력을 들여 아동보호 시스템을 구축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그 뒤에 숨어버린다. 엄벌을 한들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부모가 감옥에 간 동안 남은 아이들의 삶이 망가진다.

매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3만 건이 넘는다. 올해 예상되는 출생아 수(27만 명)의 10%가 넘는 아이들이 학대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낳으라는 정부, 나쁘다고 생각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아동학대특례법#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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