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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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감 제고에 약간 효과 있음, 근로의욕 고취 효과는 별로 없음.’ 핀란드 사회보장국이 지난달 6일 내놓은 기본소득(basic income) 실험 최종 보고서는 이렇게 요약된다. 기본소득 도입 찬성파와 반대파는 이 결과를 놓고도 각자 유리한 쪽으로 해석했다. 핀란드 정부는 2016년 말부터 2000명의 실업자에게 2년간 아무 조건 없이 매달 기본소득 560유로(약 76만4000원)를 지급하고 기본소득을 받지 않은 비수급 실업자와 스트레스 수준, 취업률 등을 비교한 정부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 액수의 기본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면 빈곤층의 안정감이 높아지고 더 적극적으로 취업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 실험에서는 이런 기대가 입증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2016년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2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근로의욕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국민이 많아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제도지만 한국 정치권에선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3일 “당이 ‘실질적 자유’를 어떻게 구현해 낼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질적 자유’는 기본소득 이론 체계를 구축한 벨기에 경제학자 필리프 판파레이스가 쓴 개념이다.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인 2016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됐다는 걸 매우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여권 역시 2022년 대선의 어젠다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기본소득 주제를 놓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기본소득에 관한 법률 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최근 집행된 긴급재난지원금 총예산이 14조3000억 원이다.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씩 지급된 이번 지원금 수준의 기본소득을 매달 전 국민에게 나눠주려면 연간 171조 원이 든다. 이런 재원 문제 때문에 청년층, 노인층 등에 제한적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공산이 크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여러 선진국이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수백 년에 걸쳐 복잡해지고 효율성이 떨어진 복지 시스템을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정비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체계에 ‘선심성 돈다발’을 추가로 얹는 형태다. 여야는 기본소득 논의를 본격화하기 전에 현재의 복지체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기본소득#복지 시스템#긴급재난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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