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域은 깨졌다[동아광장/박상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입력 2020-05-30 03:00수정 2020-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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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정대협, 위안부 문제 줄다리기
정작 중요한 할머니들 목소리는 실종
독선과 근본주의가 지금의 사태 초래
열린 태도로 존엄 회복할 지혜 모아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침묵을 깨고 진실을 알리자,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 범죄에 세계가 경악했다.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주도로 아시아 여성기금이 발족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시작됐다. 위안부 피해자 중 일부는 배상금을 수락했지만 일부는 거부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배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2018년 현재의 정의기억연대로 통합)는 여성기금에 협조하는 활동가나 피해자들과 결별했다. 정대협이 성역(聖域)이 되고 활동가들이 성소(聖所)를 지키는 신관(神官)이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여성기금의 배상을 받은 예순한 명의 한국인 피해자들과 그들을 돕던 일본인 활동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이단의 무리가 되었다. 피해자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일본인 활동가는 입국이 금지됐다.

2011년 정대협이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일본 정부와 위안부 합의에 나선 한국 외교관들은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배상과 총리의 사죄’를 강력히 요구했다. 아시아 여성기금을 배척한 이유가 이 두 가지였기 때문이다. 2015년 합의문이 발표된 당일, 매스컴의 취재에 응한 한 피해자 할머니는 정부의 뜻에 따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며칠 후 합의문을 파기하라는 정대협의 입장이 나오자 합의문을 수긍한다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2015년 들어 ‘일본 총리의 사죄’라는 한국의 요구를 일본이 수용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도쿄에 퍼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는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의문이 발표되던 당일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늙고 병약한 몸이었지만 놀라운 정신력과 사명감으로 결국 이겼구나 싶어 감동했고, 할머니들과 함께해준 정대협에 감사했다. 이제 와세다대 교정에서 위안부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 무리를 만나면, 너희 총리 아베가 인정하고 사죄했다는 말로 말문을 막아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 합의가 거부되었고, 나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했다. 내 한국인 친구들은 “피해자의 의견이 배제된 합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는 물론이고 2015년의 위안부 합의문을 읽어본 사람이 없었다. 아시아 여성기금에 의한 배상이 왜 거부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서른여 명의 피해자가 배상금을 받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은 모두에게 금시초문이었다. 피해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피해자들은 성소에 갇혀 있었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신관의 신탁(神託)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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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성역에 드리워진 금줄을 치우고 성소의 문을 연 사람들은 거기서 가난하고 병약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신관들에 분노해서 돌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역에 대한 맹목적 추종만큼이나 섣부른 단죄 역시 위험하다.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을 때 유엔인권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고 일본 정부를 압박한 것이 정대협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 오직 하나의 교리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 독선에 빠진 것이 오늘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정대협을 성역화하고 그들의 신탁에만 의존하면서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낙인찍고 추방한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지금 내 손에 든 돌은 정대협이 지목한 이단을 향해 던진 돌이기도 하다. 지금은 돌을 들 때가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마지막 여생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정대협이 쌓은 지혜와 경험이 헛되이 날아가지 않고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위안부#이용수 할머니#정대협#윤미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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