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미국의 폭탄 소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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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미국 민주당 주요 인사들에게 폭탄 소포가 배달됐다는 보도는 ‘유너바머’와 ‘탄저균 봉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기술문명을 혐오하던 수학 천재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978∼1995년 16차례나 소포 폭탄을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보내 3명을 죽이고 2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발각되기 전까지 언론에서 ‘유너바머’로 불렸다. 2001년에는 ABC방송 등 언론사와 의회에 치명적 탄저균이 묻은 봉투 우편물이 배달돼 5명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알카에다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미 육군 전염병연구소에서 근무한 생물학자 브루스 이빈스의 반사회적 범죄로 밝혀졌다.

▷이번 폭탄 소포는 모두 10건이 발견됐다. 그중에는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에게 보내진 소포도 있다. 드니로는 6월 토니상 시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파벳 F로 시작되는 욕설을 하는 등 반(反)트럼프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1962년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영웅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혀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는데 이번 사건은 그 관계가 역전된 느낌이다.

▷폭탄은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당파적 색채가 짙은 표적으로 인해 다음 달 6일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폭탄에는 개봉과 동시에 터지는 부비트랩 같은 건 없었다. 실제 폭발까지 의도한 것인지 단지 공포심만 불러일으키려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때문에 논란은 더 커졌다. 민주당은 극우 보수주의자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공화당은 민주당 열성 지지자의 자작극을 의심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 여론조사의 추세를 보면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 우위의 하원이 민주당 우위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의 일방적인 대내외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외교 분야 중 하나가 한반도 관련이다. 누가 폭탄 소포를 보냈는지의 수사 결과와 미국 민심의 향배에 우리로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로버트 드니로#폭탄 소포#탄저균 봉투#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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