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가정폭력은 가정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 입력 2018-10-27 00:00수정 2018-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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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생한 ‘강서구 아파트 전처 살인사건’은 죽음을 부르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가정폭력이 얼마나 흉포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번 사건은 20여 년간 이어진 가정폭력에 사회가 발 빠르게 대처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비극이란 점에서 안타깝다. 가정 내 폭력을 집안문제로 치부하고 공권력 개입을 꺼렸던 과거와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직도 현실은 갈 길이 멀다.

결혼생활 내내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 이모 씨는 이혼 후에도 자신을 쫓아다니는 전남편 김모 씨의 협박과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시로 머리채를 잡아끌고 옷걸이와 벨트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깨진 술병을 들고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3년 전 이혼 직전, 피해자는 끔찍한 폭행을 당한 뒤 마침내 용기를 내 신고했다. 하지만 김 씨는 체포된 지 몇 시간 만에 풀려났다.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겼을 때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1년 전 칼을 들고 찾아온 전남편에게 살해위협을 받은 날에도 경찰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으나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무겁게 처벌하긴 어렵다”는 설명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족관계의 특수성 탓에 피해자가 침묵하거나 재발의 우려가 많은 만큼 적극적 구속수사 등 공권력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행법으로는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과태료(500만 원 미만)만 부과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가정폭력사범 구속률은 0.8∼1.5%에 불과한 데다 2014년 1.3%에서 2017년 0.8%로 갈수록 낮아졌다.

이 씨는 수시로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보호소 등 6곳을 전전했지만 결국 죽어서야 지옥 같은 폭력의 덫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세 딸이 사건 다음 날 “아버지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며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형을 내려 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겠는가. 가정폭력으로 또 다른 희생양이 생기는 참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제도적 미비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가정폭력은 가정문제가 아니며, 사회문제이자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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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강서구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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