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많았다. 반면 맥킨지는 한국 건설산업은 시간당 부가가치가 13달러(약 1만4500원)에 불과해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늘리면 생산성 향상과 내수 경기 진작의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올 3월 근로시간을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이 개정됐다. 바뀐 근로기준법은 7월부터 시행되며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인 기업에 적용된다. 그러나 촉박하게 시행돼 업종별로 제도의 변화가 산업에 미칠 파장이나 대응 방안 등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 정부는 계도 기간을 최장 6개월로 정했지만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제도적 보완이 더 필요하다.
건설업은 근로시간이 줄면 공사 기간, 공사비가 늘어난다. 이를 감안해 기획재정부는 공공 건설공사에서 제도 시행 이전에 발주된 계약에 대해 계약 기간을 연장하고 이에 따른 간접비 등을 반영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지침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총사업비 관리지침’에 ‘근로시간 단축’이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간접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반영한 공사 기간과 공사비가 산정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국토교통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적정 공사 기간을 산정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주 40시간을 원칙으로 공사 기간을 정하고 폭염 폭우 폭설 강풍 등 기상조건과 인허가 등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적정 공사 기간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과 연장근로에 따른 임금 할증 등을 반영한 공사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근로시간이 줄면 기업에 비용이 더 들고 근로자는 노동 강도가 세어진다. 일용직 등 일부 취약계층은 근로조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숙련 기능공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지 않는 건설 현장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공사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숙련공의 수급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탄력적 근무시간 확대와 일용직 근로자의 수입 감소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한 나라는 대부분 업종별 단체협약에 따라 6개월부터 1년까지 주당 근로시간을 평균치로 산정할 수 있도록 탄력적 근로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 일용직 건설근로자를 배려하기 위해 추가로 공사비의 산정 기준을 마련했다. 주 5일 근무를 적용할 때 공사비에 노무비와 현장 관리비는 각각 5%, 기계 사용료는 4%를 더 매기고 있다. 한국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건설 현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제도가 연착륙하도록 탄력적 근무제, 임금체계 개편, 생산성 향상 등을 정부와 노사가 함께 지혜를 모아 풀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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