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8개월새 17만 건… 무리한 요구와 떼법 난무하는 靑 청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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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청원은 17만4545건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이후에는 매월 2만 건을 웃돌고 있다. 동아일보가 청와대 청원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이 가운데 청와대가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고 스스로 정한 기준인 30일간 20만 명 이상으로부터 공감을 얻은 청원은 모두 33건이었다. 그런데 33건 중 상당수는 청와대가 삼권분립을 위반하지 않고는 처리할 수 없거나 행정부 관할 사안이라고 해도 청와대가 위법이나 사실 오해 등의 이유로 들어줄 수 없는 청원이었다.

국민청원권은 문재인 정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이미 청원권 실현을 위해 청원법 국회법 지방자치법 등에 많은 규정이 있다. 이들 법이 하나같이 금하고 있는 것이 재판에 관여하는 청원이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이 올라 답변 기준을 넘어서자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법원행정처에 전화를 걸어 청원 내용을 전했다. 이것은 명백히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아예 청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국회의원 위법사실 전수조사’ ‘국회의원 시급의 최저시급 책정’ ‘나경원 의원의 평창 올림픽 위원직 파면’ 등은 국회법에 따라 국회로 청원해야 할 사안이다. 최단 기간 20만 명 이상의 공감을 얻은 겨울올림픽 팀추월 스케이팅 선수 김보름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청원은 일시적인 감정에 치우친 감이 있다. 최초로 20만 명 이상의 공감을 얻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은 공감할 바가 없진 않지만 형기를 마친 수감자의 출소를 막는 것은 그 자체가 불법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청원을 활성화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우리 헌법은 청원을 문서로 하도록 해 접수와 처리에 명확성을 기하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하는 청원은 익명인 데다 접수와 처리 기준이 임의적이고 청원법이 금하는 허위 사실에 의한 중상모략 등 불법의 여지를 제공하는가 하면 종종 여론몰이의 장(場)이나 분노의 배출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청원제도를 헌법과 법률에 합치하도록 바로잡아야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문재인 정부#기본권#청원권#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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