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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글로벌 이슈/박민우]누구의 땅도 아닌 예루살렘

입력 2017-12-11 03:00업데이트 2021-03-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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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8일(현지 시간)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다마스쿠스 게이트로 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경의 충돌이 가장 잦은 곳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알아끄사 모스크에서 금요 합동예배가 막 끝난 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연설(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에 항의하며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알꾸드스 아라비야(예루살렘은 아랍 땅)”이라고 외치는 시위대는 수십 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스라엘 군경과 취재진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로 구성된 시위대는 총기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경 앞에서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분노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음 날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깨달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예루살렘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도시들은 체크포인트로 불리는 군 검문소와 높은 장벽으로 가로막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붕 없는 감옥에 갇힌 신세나 다름없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거나 출입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조차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위험인물로 찍히면 장사를 할 수 없게 되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유진상 히브리대 한동대글로벌센터장은 “예루살렘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20, 30대 젊은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생계 문제로 점차 온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기자를 제외하면 모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버스가 검문소에 멈춰 서더니 타고 있던 승객들이 줄지어 내렸다. 승객들은 대기하고 있던 군인 앞에 한 줄로 선 채로 추위에 떨며 보안검색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텔아비브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심사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예루살렘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따로 조사를 하겠다며 대기실로 데려갔다. 죄 지은 것도 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1시간 넘게 시계만 쳐다봤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건 시답잖은 질문 몇 개였다. 불편과 불쾌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런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부터다. 이스라엘의 건국이 그들에게는 ‘나크바(파국)’였다. 당시 14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 가운데 약 80만 명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쫓겨나거나 요르단, 시리아, 터키 등지로 떠나야 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1300여 개 마을 중 774곳을 점령하고 531곳을 지도에서 깨끗하게 지워 버렸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1만5000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서 해방된 지 3년 만에 벌인 일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6일 전쟁’을 통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물론이고 예루살렘의 성지(聖地) 템플마운트(성전산)까지 점령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독립할 경우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8년부터 국회의사당과 정부중앙청사, 대법원, 이스라엘 중앙은행을 예루살렘으로 줄줄이 옮겨 사실상 행정수도로 만들었다.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 터에 남은 ‘통곡의 벽’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평화의 땅에 수차례 상처를 남겼다.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태평성대를 이뤘다. 솔로몬의 지혜가 있다면 예루살렘의 주인을 판별할 수 있을까. 한 아이를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자에게 솔로몬 왕은 아이를 반으로 잘라 나눠 가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진정한 모성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포기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성지가 피로 물드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는 걸까.― 예루살렘에서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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