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65세 이상 모든 치매 환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도록 하는 치매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어제 발표했다. 그간 장기요양등급 대상에서 제외됐던 경증 치매 환자에게도 요양보험을 적용하고 집에 있는 치매 환자에게는 성인용 기저귀 구입비를, 요양시설에 있는 치매 환자에게는 평균 25만 원가량의 식재료비를 지원한다는 것이 새로 나온 내용이다. 하지만 정작 수혜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장기요양등급 확대 내용은 물론 지원의 구체적 시행시기와 적용대상은 빠져 있다.
당사자에게는 하루가 다급하고 절실한 치매대책을 구체적 시행시기와 적용대상도 없이 서둘러 발표한 이유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초 서울요양원을 직접 찾아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선포한 데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그랬다고 보이지만 함께 발표된 치매안심센터와 안심요양병원 확충을 보면 수치만 구체화됐을 뿐 지난번 발표안의 재탕이다. 제10회 치매극복의 날(21일)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실적 홍보를 위해 이벤트성으로 기획됐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현재 70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치매다. 급격한 고령화로 지난 5년간 치매 환자의 비율도 2배 증가했다. 이렇게 사회적 부담이 늘어나는데 재원을 대줄 납세 계층은 급감하고 성장동력이 꺼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매를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으니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정부는 갑갑할 것이다. 복지부가 기저귀와 식재료비 부담액을 아직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치매는 21세기의 천형(天刑)이라고 할 정도로 환자와 가족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치매 배우자나 부모를 돌보다 지쳐 함께 가족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치매환자를 국가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재원이다. 치매 가족의 기대감만 높이고 실질적 지원을 하지 못한다면 ‘희망 고문’이라는 비난만 더 커질 것이다. 수요자 고충을 반영한 면밀한 계획과 함께 왜 국민이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쇼’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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