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건희]대통령의 결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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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학 시절이던 1965년 폐결핵을 앓았다. 활동성 폐결핵은 기침으로 전염되지만 약을 일정 기간 먹으면 완치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폐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그는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2009년 12월 폐의 상태가 심각해져 3분마다 기침을 했다”라고 적었다. 병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수십 년 전 치료한 결핵이 몸속에 잠복했다가 재발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외국에서 알면 한국을 후진국처럼 여기지 않겠느냐”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김두우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말이다. 결핵은 감염 관리와 영양이 부실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 주로 걸려 ‘후진국병’이라 불린다. 그래서 특별 지시를 내린 걸까. 정부는 2010년 149억 원이던 국가 결핵 예방 사업 예산을 2011년 445억 원으로 파격적으로 늘렸다. 그해 보건복지 분야를 통틀어 가장 증가 폭이 컸던 예산이다. 정부는 결핵 환자 가족에게 무료 검진 쿠폰을 나눠 주고 민간 병원엔 결핵 전담 간호사를 배치했다.

10년째 늘기만 했던 국내 결핵 환자가 2011년부터 줄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감소 폭은 답답하다. 국민 3분의 1이 감염돼 있다는 잠복 결핵균을 미리 찾아내 씨를 말리는 게 아니라 증상이 나타나면 그제야 치료하는 방식이어서다. 결핵 환자가 2010년 인구 10만 명당 102명에서 2014년 86명으로 줄어 간신히 우즈베키스탄과 비슷해졌으니, 이대로라면 미국(3명)은 고사하고 일본(18명) 수준이 될 날도 멀어 보인다.

후진국병의 숙주는 후진적인 정책이다. 지난달엔 이대목동병원에서, 최근엔 삼성서울병원에서 간호사가 결핵에 걸렸다. 정부가 4일부터 의료인 등 집단시설 종사자의 결핵 검진을 의무화했지만 반쪽짜리 규정이다. 회당 5만∼10만 원인 검사비를 병원장 등 시설 대표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검진을 시키지 않아도 과태료 200만 원만 물면 된다.

그래서 정부가 전략을 바꾼다. 집단시설 종사자 145만 명뿐 아니라 결핵 환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하는 연령인 고등학교 1학년 55만 명의 잠복결핵을 일제히 검사해 숨어 있는 결핵균을 박멸하겠다는 거다. 시행하려면 내년 결핵 예산을 올해의 곱절에 가까운 750억 원대로 늘려야 한다. 당장은 비용이 크게 들지만 장기적으론 의료 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데 괴상한 얘기가 들린다. 재정 부담을 감안해 집단시설 종사자 중 일부만 검진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거다. 고교 1학년생 일제 검진은 관계 부처인 교육부와 기획재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기 싸움을 벌이는 통에 시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입만 아프다. 부처들이 머리를 모으려면 결핵이 다시 ‘대통령 관심 사안’이 돼야 하나. 올해 말엔 아래와 같은 기사는 쓰고 싶지 않다.

“결핵 환자가 10년 전의 3배로 증가했다. 위생 당국은 결핵 예방을 위해 내년 예산 1만7000원을 요구했지만 재무 당국은 재정난이라는 이유로 전부 삭감해 버렸다.”(1935년 9월 10일자 동아일보)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이명박#조건희#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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