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덜트족 톡톡]“베어브릭 사러 일본까지… 2년에 3000만원 비용 안아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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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조립 30년… 놀다보면 스트레스 훌훌, 삶의 일부 됐죠”

《 아이와 같은 감성을 지닌 어른을 ‘키덜트(kidult)’라고 부릅니다.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지요. 건담 조립, 드론 날리기, 피겨 수집 등 키덜트족의 취미는 그야말로 각양각색. 그들에게 이 취미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동심을 되찾고 위안을 얻는 출구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잇값도 못 한다’는 주변의 시선이나 취미를 즐기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은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키덜트족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건담 조립을 여섯 살부터 시작했어요. 애니메이션을 보고 반해서 건담 프라모델을 갖게 됐는데, 그때부터 서른일곱 살인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해왔네요. 이걸 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잘 가요. 평소 받았던 스트레스도 풀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 3∼4시간가량 투자하고 있어요. 제 삶의 일부가 됐죠. 지금껏 모은 건담이 무려 500개 정도. 이젠 제가 직접 개조하고 도색을 한 건담을 온라인에 되팔기도 합니다. 구입가의 두 배 가격으로 파는데 용돈벌이로 쏠쏠해요. 그 돈으로 골프도 친답니다.(37·유통업 종사자)

―드론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된 초보입니다. 주말마다 아내랑 드라이브도 할 겸 외곽으로 나가 드론을 날리고 있어요. 드론이 항공법을 적용받아 서울지역 대부분은 ‘드론 비행 금지구역’입니다. 사고 위험도 있어 사람과 차가 적은 한적한 공간을 찾아야 해요. 최근엔 남양주 한강공원으로 갔습니다. 20만 원가량의 저렴한 완구형 드론으로 조종 기술을 익히고 있죠. 전문적인 촬영을 위해서라기보단 재미로 날립니다. 날아가는 물체를 조종한다는 사실이 제 도전의식을 굉장히 자극하거든요.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에 따라 적절히 컨트롤도 해야 하고, 관성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34·고교 교사)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수집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던 제게 마침 2년 전 직장 후배가 앤디 워홀 베어브릭(곰 모양의 블록) 세트를 선물했어요. 그때부터 ‘베어브릭 개미지옥’에 빠져들었죠. 베어브릭 피겨는 형태와 규격이 일정해 매력 있어요. 함께 세워놓으면 통일감이 들죠. 디자인은 수천 가지. 장근석이나 방탄소년단 같은 연예인부터 알렉산더 지라드, 찰스 임스 같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컬래버레이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요. 베어브릭 제조 회사가 올해 도쿄에서 한정판을 발매했는데 저도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왔어요. 5시간 넘게 줄을 선 끝에 말이죠. 2년간 1000개 정도 모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3000만 원 정도 들었네요. 그래도 그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답니다.(41·IT 기업 임원)

―소녀시대 태연의 취미가 나노블록인 거 아시죠? 연예인들 덕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노블록이 소문을 타기도 했는데요. 특히 지난해 즈음부터 인기가 많아졌던 것 같아요. 제 상점이 광화문 부근에 있다 보니 저희 가게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이 많이 와요. 요즘엔 디즈니 미키·미니마우스 캐릭터와 어벤저스 시리즈가 인기 있습니다. 만드는 시간은 크기와 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두 시간 정도면 완성해요. 가격도 부담 없고 재미도 있어 인기 만점입니다.(29·여·나노블록 매장 주인)

―지난해 12월 컬러링북 ‘비밀의 정원’이 큰 인기였어요. 저도 회사 스트레스도 풀 겸 컬러링북의 세계로 입문했답니다. 올해 2월부터는 컬러링북 모임도 만들어 이끌고 있어요. 색연필로 각종 도안을 채워가다 보면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곤 하죠. 예쁜 색을 입혀 새로운 그림으로 재창조했다는 걸 느낄 때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무엇보다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크게 얻어요. 학창시절 미술시간 때처럼 자기 그림을 들어 보여주는데, 서로 칭찬도 많이 하고 박수도 쳐준답니다. 회사에선 일을 잘하면 인정받지만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곤 하잖아요. 여기선 어떻게 색칠을 했든 서로 장점을 발견해주니 절로 힐링이 됩니다.(36·여·레스토랑 관리직)

―저는 건물이나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의식주를 놓고 보면 옷과 음식은 비교적 쉽게 살 수 있지만 집은 함부로 사고팔 수 없잖아요. 레고를 통해 공간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상상의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어 좋아요. 예를 들어 완제품으로 나온 1층 가정집을 설명서에 나온 대로 만들 수도 있지만 부품을 더해 3층짜리 레스토랑으로 개조할 수 있어요. 조그마한 육면체 플라스틱을 모아 고층빌딩, 도서관, 공원 등 내가 생각하는 무궁무진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죠. 최근엔 ‘버거킹 매장’을 만들었어요. 남편이 버거킹을 좋아해 선물로 만들어줬어요. 사진을 찍어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모두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오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죠. 버거킹코리아에서 연락이 와 홍보 사진으로 쓰기도 했답니다.(45·여·주부)

―일본 캐릭터 리락쿠마 제품을 10년째 모으고 있어요. ‘릴랙스한 쿠마’(편안한 곰)에서 따온 이름의 캐릭터인 만큼, 리락쿠마의 귀여우면서도 뚱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제품은 한번 살 때마다 5만∼20만 원 정도 쓰는 편이에요. 인형이나 스티커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충전기, 주방용품, 이불 같은 생활용품까지 저의 거의 모든 물건이 리락쿠마 캐릭터 용품입니다. 간혹 ‘나잇값 좀 해라’ ‘돈 안 모으냐’는 얘길 듣기도 해요. 하지만 남들이 술자리나 여행에 돈 쓸 때 저는 ‘아이들’(리락쿠마) 모으는 거니까, 전혀 아깝지 않아요. 요즘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 중이에요. 지금까지 모은 제품으로 리락쿠마 콘셉트의 카페도 열 계획입니다.(26·여·화장품 판매업)

―어렸을 적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장난감을 많이 못 샀어요. 그래서 한이 맺힌 기억이 있죠. 아이들 레고를 사주다가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그 시절을 보상하고 싶기라도 했는지 어느덧 저도 아이와 함께 레고를 즐기고 있습니다. 밖에서 술 안 마시고 일찍 들어와 아이와 취미를 즐길 수 있어 좋아요. 덕분에 서로 대화 시간이 많습니다. 저랑 아이는 주로 자동차나 크레인 같은 중장비 모델을 조립합니다. 정교하게 끼고 들어가는 ‘손맛’이 일품이죠. 실제 모터를 끼워 움직이게도 만들고요. 사실 초기 투자비용이 부담스럽긴 합니다. 레고 관련 지출명세를 정리해보니 중형차 한 대 값이 나오더군요. 그때부터 자제하고 있습니다.(42·토목설계회사 재직)

―‘레테크’(레고와 재테크의 합성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요즘 잘 팔릴 만한 레고 제품을 싹쓸이했다가 되파는 소위 ‘리셀러’가 늘고 있어요. 여유 있는 분들은 같은 제품을 10박스, 100박스씩 사기도 해요. 고백하건대 사실 저도 레테크를 즐기는 리셀러입니다. 일부 단종된 인기 모델은 정가보다 몇 배나 가격이 뛰거든요. 저도 레테크를 목적으로 보관해둔 모델이 몇 개 있어요. 정말 못 뜯겠어요. 그중 하나는 4년 전 60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150만 원이 됐어요.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 같아요. 저와 같은 ‘리셀러’가 늘어나면 순수하게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비싸게 제품을 사야 하니…. 사실 문제이긴 하죠.(34·디자이너)

―원래 한 달에 150만 원씩 저축했는데 레고를 시작하면서 통장에 돈이 모이질 않더군요. 그간 조립하는 시간, 레고 관련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시간 등을 다 더하면 하루 10시간 이상을 레고에 투자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립한 후 완성품을 전시해놓고 흐뭇해했죠.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혼자 살던 곳에 둘이 살게 되면서 짐이 늘었어요. 제가 조립한 것들을 전시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아내가 슬슬 레고를 정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기 시작했죠.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새 박스만 쌓여갔고 아내는 “조립도 안 할 것들을 왜 사냐”며 잔소리가 늘었죠. 이제는 신상품이 나와도 더는 사지 않게 됐습니다.(37·고교 교사)

오피니언팀 종합·임세희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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